유형문화재/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6호_문희공 유창 묘역

기리여원 2022. 2. 21. 14:31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6호 _ 문희공 유창 묘역 (文僖公 劉敞 墓域)

 

수량/면적 : 분묘 2基, 석물 6基, 토지 510.6㎡

지정일 : 1995.01.25

소재지 : 서울 강동구 상일동 190번지

 

신도비란 왕이나 2품 이상의 공신들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가까이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고려말·조선초의 유명한 문신인 유창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유창(?∼1421)은 고려 공민왕 20년(1371) 문과에 급제한 후 성균학우를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맡아 보았다.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때 그를 도와주어 개국공신이 되었고, 태종 8년(1408) 태조가 죽자, 능을 지키는 관리가 되어 3년간 그의 능을 지켰다. 태종 16년(1416)에는 옥천부원군에 봉하여졌다. 일찍이 이성계와 사귀어 그에게 가르침을 주었고, 개국 후에도 여러 차례 왕에게 강론을 하였다. 성격이 부드럽고 너그러웠으며, 지위가 높을수록 마음이 겸손하여 사람들이 당나라의 누사덕(婁師德)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비가 서 있는 이 일대에는 유창의 묘와 그 자손들의 묘가 함께 자리하고 있는데, 우람하게 버티고 서 있는 이 비 외에도 여러 석조물들이 남아있어 당시의 석조미술과 묘제연구에 중요자료가 되고 있다.

 

 

문희공 유창 묘역 표지판

 

 

문희공 유창 묘역  주출입문

 

 

강릉유씨제각(江陵劉氏祭閣) 현판

 

 

유창선생의 재실인 해천재(蟹川齋)

 

 

신도비

 

 

구 신도비

 

 

구 신도비

 

 

신신도비

 

문희공 유창 묘역

 

문희公(文僖公) 유창(劉敞, ?~1421)

 

본관은 강릉. 초명은 경(敬). 자는 맹의(孟義), 호는 선암(仙庵). 아버지는 지군사(知郡事) 천봉(天鳳)이다.

1371년(공민왕 20)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학유(成均學諭)·박사·문하주서 등을 지냈다. 우왕 때 통례문지후(通禮門祗侯)·전공좌랑(典工佐郞)·예의정랑(禮儀正郞)·군부정랑(軍簿正郞), 공양왕 때에는 성균사예(成均司藝)·호조의랑(戶曹議郞)·성균좨주(成均祭酒) 등을 역임했다.

 

일찍부터 이성계와 절친하여 그에게 경사를 강론했으며, 1392년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 2등으로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그뒤 좌산기상시·중추원좌부승지를 거쳐 1394년(태조 3) 중추원부사를 지내고 옥성군(玉城君)에 봉해졌으며 첨서중추원사가 되었다. 왕위계승권을 둘러싸고 왕자들 간에 싸움이 일어나 결국 이방원이 즉위하자 1401년(태종 1) 소요산(消遙山)으로 들어간 태조를 찾아가 귀경을 권유했다.

 

예문관대제학·세자우부빈객 등을 거쳐 1408년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로 있을 때 태조가 죽자 수묘관(守墓官)이 되어 3년간 시묘했다. 이후 길주도찰리사(吉州道察理使)·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세자이사를 지낸 뒤 1416년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진봉되었으며, 1421년(세종 3) 궤장을 받았다. 저서에 〈선암집〉이 있다.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문희공 유창 묘역

 

2022.02.20. 강동구 상일동, 문희공 유창 묘역

글 문화재청,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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