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90호_예산 임존성

기리여원 2023. 4. 30. 05:38

사적 제90호 _ 예산 임존성 (禮山 任存城)

 

면    적 : 553,697㎡

지정일 : 1963.01.21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 산8번지

시    대 : 삼국시대

 

백제 때 수도 경비의 외곽기지 역할을 한 성이다. 봉수산(鳳首山)의 꼭대기에 있는 둘레 약 3의 산성으로 백제가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는 성문터와 성문 밑으로 개울물이 흐르게 하던 수구문, 그리고 우물터 ·건물터가 남아있다. 성벽의 바깥쪽은 돌을 다듬어 차곡차곡 쌓고 안쪽으로는 흙을 파서 도랑처럼 만들어 놓았다. 또한 성의 네 모퉁이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다른 곳보다 약 2m정도 두껍게 쌓았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는 주류성과 더불어 백제 부흥군이 활동했던 곳으로, 사비성을 되찾기 위한 부흥군의 마지막 근거지이다. 이 성에서 흑치상지(黑齒常之)를 중심으로 백제의 부흥을 꾀하였으나 실패했다. 또한 후삼국시대에는 고려 태조 왕건과 견훤이 이 곳에서 전투를 벌였다고도 전해지는 유서깊은 곳이다.

 

예산 임존성 표지판

 

 

국도에서 2.3km 올라가면 임존성 남문주차장이 나옵니다

 

 

남문주차장에서 임존성으로 올라갑니다

 

 

예산 임존성 (禮山 任存城)

 

임존성은 예산군 광시면 · 대흥면과 홍성군 금마면이 만나는 봉수산(해발 483.9m) 봉우리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크고 작은 6개의 봉우리를 에워싼 태뫼식 산성이다. 성벽은 외벽만 돌로 쌓고 안쪽은 돌과 흙을 다져 쌓았다. 임존성은 둘레가 2468.6m(GPS 측량값)이고, 면적은 553,697㎡. 성내 시설로는 문지(門址) 2곳,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적대(敵臺) 1곳과 치(雉) 4곳, 배수구(排水口) 1곳, 우물 3곳과 여러 곳의 건물 터 등이 남아 잇다. 성안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삼국(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기편, 자기편, 기와편 등이 있는데, 특히 그중 '임존(任存)' 또는 '임존관(任存官)'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는  이곳이 역사서에 등장하는 임존성임을 뒷받침한다

 

예산 임존성 (禮山 任存城)

 

임존성은 『삼국사기 』와 『구당서(舊唐書) 』등에 따르면 '백제의 장수 흑치상지(黑齒常之)가 임존산에 올라 울타리(柵)을 쌓고 당나라의 유인궤(劉仁軌)에 맞서 싸운 곳"이자 '백제의 왕자들이 모두 항복하였으나 장수 지수신(遲受信)만은 끝내 항복하지 않고 지켜낸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과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도 비슷한 내용이 전하는데, 왕건(王建)이 고려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후백제(後百濟)의 견훤(甄萱)과 전투를 벌인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예산 임존성 (禮山 任存城)

 

임존성은 백제가 도성을 지키기 위하여 군사적 요충지에 쌓은 거점 성으로 조선시대까지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임존성의 가치는 백제가 멸망한 이후에 백제인들이 부흥운동을 시작한 곳이자 마지막까지 항거하였던 곳으로 백제의 부흥 정신이 깃들어 있는 유서 깊은 성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예산 임존성 (禮山 任存城)

 

 

예산 임존성 (禮山 任存城)

 

 

예산 임존성 (禮山 任存城)

 

 

예산 임존성 (禮山 任存城)

 

 

예산 임존성 (禮山 任存城)

 

 

예산 임존성 (禮山 任存城)

 

 

임존성내 안내 표지석

 

 

예산 임존성 (禮山 任存城)

 

 

예산 임존성 (禮山 任存城)

 

 

동벽 건물지

 

 

이 곳에서 대련사주차장까지는 600m로 30분 소요됩니다.

 

 

예산 대련사

 

 

임존성에서 바라본 예당저수지

 

 

예산 임존성 (禮山 任存城)

 

 

예산 임존성 (禮山 任存城)

 

 

예산 임존성 (禮山 任存城)

 

 

예산 임존성 (禮山 任存城)

 

2023.04.28. 예산 임존성

글 문화재청, 전시안내판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