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인천광역시 35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9호_장곶돈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9호 _ 장곶돈대 (長串墩臺) 수량/면적 : 1곽 / 1,328.6㎡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113번지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 두는 초소이다.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둔다. 이 돈대는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하여 그 위에 작은 요새를 만든 것이다. 장곶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긴곶돈대’라고도 불린다. 해안으로 돌출된 지형에 자리 잡아서 관측과 방어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내부 지름이 31m인 원형 구조로 둘레가 128m, 석벽 높이 210㎝~350㎝이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4호_부근리 고인돌군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4호 _ 부근리 고인돌군 (富近里 고인돌群) , 15번 고인돌 수량/면적 : 16기 / 237,508㎡ 지정일 : 1999.04.26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317번지 일원시 대청동 시 대 : 청동시대 부근리 고인돌군은 사적 제137호로 지정된 강화부근리 지석묘 주변, 해발 50m 내외의 낮은 구릉과 평지에 모두 16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평지에는 사적 제137호인 강화부근리 지석묘와 탁자식 고인돌의 고임돌로 추정되는 석재 하나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약 300m 떨어진 솔밭에 덮개돌 밑에 고임돌이 없는 고인돌인 개석식 고인돌 3기가 축조되어 있으며, 사적 제137호의 동쪽 낮은 구릉에는 탁자식 4기와 개석식 고인돌 4기가 분포하고 있다. 부근리 고인..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6호_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6호 _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 (江華 內可 鰲上里 고인돌) 수량/면적 : 1기 / 9.1㎡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오상리 산 125-1 오상리 고인돌군에서는 모두 12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데, 2000년 실시된 발굴조사에 의하면 모두 북방식 고인돌이라 한다. 고인돌의 묘실구조는 'ㅍ'자 형태이고, 크기는 대·중·소형으로 구분된다. 무문토기와 대롱옥, 반달돌칼, 화살촉 등 매우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 표지판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 주차장 우측 돌계단으로 올라가면 바로 볼 수 있습니다.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로 올라가는 돌계단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 전경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1호_북일곶 돈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1호 _ 북일곶 돈대 (北一串 墩臺) 수량/면적 : 1곽 / 986㎡ 지정일 : 1999.03.29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산 361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토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한 초소이다.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두는 시설물이다. 장곶보의 관리하에 있었던 이 돈대는 높이 2.5m, 둘레 120m 의 규모를 지닌 직사각형으로, 포좌(포를 놓는 자리) 4곳과, 치첩 32개소를 두었다. 성곽 위에는 몸을 숨길수 있도록 낮게 쌓았던 담의 흔적만 남아 있다. 조선 숙종 5년(1679) 윤이제가 강화유수로 있을 때 설치한 것으로, 함경도·황해도·강..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2호_용진진, 좌강돈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2호 _ 용진진 (龍津鎭) 수량/면적 : 1곽 / 5,503.2㎡ 지정일 : 1999.03.29 소재지 : 인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215번지 진이란 군인이 머물러 있던 무장 성곽도시를 이른다. 용진진은 조선시대 각 진에 배치되었던 병마만호의 관리하에 있었던 곳으로, 101명의 병력이 주둔해 있었다 한다. 포좌(포를 놓는 자리) 4개소, 총좌(총을 놓는 자리) 26개소의 시설물이 있었으나 석축 대부분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을 이루고 있는 출입문 2곳만이 남아 있었는데, 1999년 그 위로 누각을 새로이 복원해 놓았다. 조선 효종 7년(1656)에 축조되었으며, 가리산돈대·좌강돈대·용당돈대 등 3개의 돈대를 관리하였다고 한다. 용진진 표지판 용진진 용진진 용진..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0호_강화전성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0호 _ 강화전성 (江華塼城) 수량/면적 : 약 270m(7,176.4㎡)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 강화군 불은면 오두리 563번지 강화전성은 고려 고종이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뒤 해안 방어를 위해 적북돈대로부터 초지진까지 약 23km에 걸쳐 쌓은 강화 외성의 일부 구간을 조선 영조 때 벽돌로 쌓은 성이다. 강화외성은 조선 광해군 때부터 숙종 대에 이르기 까지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특히 영조 때에는 강화유수 김시혁(金始爀)의 건의에 의해 1742년(영조 18)부터 1744년(영조 20)까지 오두돈대 주변의 외성을 개축하면서 벽돌을 이용하여 쌓았다. 이 성을 강화전성이라 한다. 현재 오두돈대 주변에는 당시 쌓은 전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으..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3호_교동읍성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3호 _ 교동읍성 (喬桐邑城) 수량/면적 : 1곽 / 5,958.7㎡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577번지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의 교동읍성은 한 도읍 전체를 둘러싸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았으며, 군데군데 문을 내어 바깥과 통하도록 만들었다. 성의 둘레는 약 430m, 높이는 약 6m로, 동·남·북쪽 3곳에 성문을 두었고, 각 문에는 망을 보기 위해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은 통삼루, 남문은 유량루, 북문은 공북루라고 하였다. 조선 인조 7년(1629)에 처음 쌓았으며, 영조 29년(1753) 고쳐 쌓았고, 고종 21년(1884)에는 성문을 다시 세웠다고 ..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7호_보문사 향나무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7호 _ 보문사 향나무 (普門寺 香나무) 수량/면적 : 1주 / 85.1㎡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1 향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을 비롯해 울릉도와 일본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상나무·노송나무로도 불린다. 이 나무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용도로 쓰이며 정원수·공원수로도 많이 심는다. 보문사의 향나무는 보문사 석실(石室) 앞 큰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다. 나무의 나이는 7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20m, 둘레는 3.2m 정도이다. 높이 1.7m에서 두 줄기로 갈라지는데 동쪽 줄기의 둘레는 1.3m, 서쪽 줄기의 둘레는 1.5m이다. 나무의 형태는 마치 용이 용트림을 하고 있는 듯이 보여 기묘한 느낌..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2호_계룡돈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2호 _ 계룡돈대 (鷄龍墩臺) 수량/면적 : 1곽 / 2,727㎡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 282번지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토내 접경지역이나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한 초소로,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두는 시설물이다. 망월평야 남서방향의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 이 돈대는 바깥벽 측면에 기록이 남아 있으며, 망월돈대와 함께 관아에서 관리하던 돈대이다.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해 조선 숙종 5년(1679)에 설치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처럼 돈대의 제작년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보기드문 예이다. 계룡돈대 표지판 계룡돈대 계룡돈대 계룡..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9호_굴암 돈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9호 _ 굴암 돈대 (屈岩 墩臺) 면 적 : 4,026㎡ 지정일 : 1999.03.29 소재지 : 인천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산98번지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토 내 접경지역이나,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 두는 초소이다.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을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두는 시설물이다. 정포보 소속의 이 돈대는 타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포를 설치해 두기 위한 포좌를 4곳에 설치하였다. 조선 숙종 5년(1679) 윤이제가 강화유수로 재임해 있을 때, 병조판서 김석주의 명을 받아 쌓아놓은 것이라고 전한다. 굴암 돈대 표지판 굴암 돈대 굴암 돈대 굴암 돈대 굴암 돈대 굴암 돈대 높이 3m, 둘레 70m의 타원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