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등록문화재 81

국가등록문화재 제711호_조일관계사료집

국가등록문화재 제711호_ 조일관계사료집 (朝日關係史料集) 수 량 : 4책 지정일 : 2018.05.08 소재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독립기념관로 1 (목천읍, 독립기념관) 시 대 :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편찬한 최초이자 유일한 역사서로, 조선총독부 등에서 발간하는 일제의 선전물이 국제적으로 식민통치의 실상을 왜곡하는 것에 대응하고, 국제연맹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책은 한일관계사를 삼국시대부터 연대별로 다루어 일본의 침략성을 실증하고, 경술국치 이후 식민탄압의 잔혹성과 3.1운동의 원인 및 전개과정 등을 포함하여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100질이 만들어졌으나, 현재 국내에서 완질로 전하는 것은 독립기념관 소장본이 유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일관계사료..

국가 등록문화재 제652호_대동단결선언문서

국가등록문화재 제652호 _ 대동단결 선언문서 (大同團結 宣言文書) 수량/면적 : 1점/세로 20.1 × 가로 14.5㎝ 지정일 : 2015.12.08 소재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독립기념관로 1 (목천읍, 독립기념관) 시 대 : 1917년 신규식 등이 통일적인 독립운동조직을 결성하려는 뜻을 가지고, 국내·외의 민족 운동가들에게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민족대회를 소집하기 위하여 작성한 국한문 혼용의 문서이다. 이 선언문은 독립운동의 이념 확립은 물론 해외 독립운동 세력의 단결과 임시정부 수립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고, 현재 희소가치가 매우 높다. 대동단결 선언문서 (大同團結 宣言文書) 1917년 조소앙 · 박은식 · 신채호 등 14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임시정부의 수립을..

국가 등록문화재 제458호_진관사 소장 독립신문류

국가등록문화재 제458호 _ 진관사 소장 독립신문류 (津寬寺 所藏 獨立新聞類) 수 량 : 5종 20점 지정일 : 2010.02.25 소재지 :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길 73 (진관동, 진관사) 시 대 : 일제강점기 2009년 5월에 서울시 은평구 소재 진관사(津寬寺) 칠성각(七星閣) 해체 보수과정에서 내부 불단과 벽체사이에 있던 독립신문류 등 5종 20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신문류의 발행일자가 1919년 6월~12월 사이에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동 자료는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진관사에서 활동하던 스님이 독립운동에 가담하며 확보한 자료로 추정된다. 이렇게 귀중한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가 같은 장소에서 일괄적으로 발견되었다는데 그 의미가 클 뿐만 아니라, 1919년 3.1운동 이후 6월에서 12..

국가 등록문화재 제385호_태극기 목판

국가등록문화재 제385호 _ 태극기 목판 (太極旗 木版) 수 량 : 1점 지정일 : 2008.08.12 소재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독립기념관로 1 (목천읍, 독립기념관) 시 대 : 1919년 태극기를 찍어내기 위해 목재에 4괘와 태극문양을 새긴 목판으로 희귀할 뿐 아니라 당시 제작기법과 상황을 헤아릴 수 있는 것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태극기 목판 (太極旗 木版) 3 · 1운동 당시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어 내기 위한 목판으로 태극과 사괘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2023.03.05, 독립기념관 글 문화재청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국가 등록문화재 제386호_남상락 자수 태극기

국가등록문화재 제386호 _ 남상락 자수 태극기 (南相洛 刺繡 太極旗) 수 량 : 1점 지정일 : 2008.08.12 소재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남화리 230 시 대 : 1919년 ­독립운동가 남상락(1892~1943)이 1919년 4월 4일 독립만세 운동에 사용하기 위하여 부인과 같이 만든 전체가 손바느질로 제작된 희귀한 태극기이다 남상락 자수 태극기 (南相洛 刺繡 太極旗) 표지판 _ 독립기념관소장(남선우 기증) 1919년 4월 4일 충남 당진(엣 서산)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남상락(南相洛)의 태극기이다. 손바느질로 제작된 점이 특징인 남상락 태극기는 당진의 천의장터 만세시위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2023.03.05, 독립기념관 글 문화재청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국가 등록문화재 제525호_국한회어

국가등록문화재 제525호 _ 국한회어 (國漢會語) 수 량 : 2권 지정일 : 2012.12.24 소재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서울대학교 시 대 : 1895년 1895년 이준영, 정현, 이기영, 이명선, 강진희의 다섯 사람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 대역사전으로 서울대 규장각 소장의 필사본이다. 건책이 177장, 곤책이 187장, 모두 364장 총 25,520개의 표제항으로 되어 있다. 책의 장정은 우철(右綴)의 5침 선장본이지만 책의 서문과 본문의 필서 방식은 좌에서 우로 진행 되어 있으며, 본문도 가로쓰기로 되어있다. 또한 표제항을 가나다라 순으로 배열하였으며 표제어를 한글로 표기하고, 풀이말을 한문으로 표기하였는데, 외국과의 교류를 통한 신문화ㆍ문명의 도입에 따른 새로운 제도와 학문에 ..

국가등록문화재 제796호_이긍연 을미의병 일기

국가등록문화재 제796호 _ 이긍연 을미의병 일기 수 량 : 1건 1점 지정일 : 2020.10.15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신문로2가, 서울역사박물관) 시 대 : 1895~1896년 ‘이긍연 을미의병 일기’는 안동의병 중 한사람이었던 이긍연(李兢淵, 1847∼1925)이 을미사변 이후인 1895년 12월 1일부터 1896년 10월 11일까지 직접 보고들은 내용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것으로, 의병투쟁 당시의 실상, 군사력, 문중간의 이해관계나 의병에 대한 태도 등 의병 관련 기록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격문·통문 등의 사항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해당 유물은 을미의병의 활동 전모를 담고 있는 대표적·상징적인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긍연 을미의병 일기 표지판 이긍연 을미..

국가등록문화재 제218호_봉화 유곡리 근대 한옥

국가등록문화재 제218호 _ 봉화 유곡리 근대 한옥 (奉化 酉谷里 近代 韓屋) 수량/면적 : 1동, 1층, 연면적 130.84㎡ 지정일 : 2005.11.11 소재지 : 경북 봉화군 봉화읍 토일길 156-12 (유곡리) 시 대 : 1904년경 1904년경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전통목조 주택.가구기법 및 치목기법이 우수하고 공간 및 형태의 구성미와 조형미가 뛰어남 봉화 유곡리 근대 한옥 봉화 유곡리 근대 한옥 전경 봉화 유곡리 근대한옥은 경북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ㅁ'자형 평면 형태의 본채 건물과 '_'자형의 문간채로 구성된 한옥이다. 봉화 유곡리 근대 한옥 문간채 문간채는 출입문 및 창고를 겸한 4칸 규모의 '_'자형 건물이다. 봉화 유곡리 근대 한옥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6칸 규모의..

국가등록문화재 제704호_태안 동문리 근대한옥

국가등록문화재 제704호 _ 태안 동문리 근대한옥 (泰安 東門里 近代韓屋) 면 적 : 안채 152㎡, 사랑채 164㎡, 대문간채 85㎡, 창고 겸 화장실 19㎡ 지정일 : 2017.12.05 소재지 : 충청남도 태안군 경이정5길 51 (태안읍) 시 대 : 1930년 과거 태안읍성의 중심부에 1930년 건축된 근대한옥으로 지역에서 드물게 현존하는 근대문화유산이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총 4채의 건물(안채, 사랑채, 대문간채, 창고 겸 화장실)로 구성되었으며, 전통주택 양식을 기반으로 근대적 생활양식과 주거기능의 수용에 따라 평면 및 실 구성, 공간구조가 변화되었던 근대한옥의 건축기법을 예시하고 있다. 태안 동문리 근대한옥 표지판 태안 동문리 근대한옥 배치도 태안 동문리 근대한옥 태안 동문리 근대한옥 태안 ..

국가등록문화재 제257호_봉화 척곡교회

국가등록문화재 제257호 _ 봉화 척곡교회 (奉化 尺谷敎會) 수량/면적 : 2동, 1층 ,예배당 72.78㎡ ,명동서숙 40.6㎡ 지정일 : 2006.06.19 소재지 : 경북 봉화군 법전면 건문골길 186-42, 외 1필지 (척곡리) 시 대 : 1910년 이 교회는 구한말 탁지부 관리를 지낸 김종숙(1872~1956)이 건립하였다. 예배당은 원래 정면 3간, 측면 3간의 정방형 건물이었으나, 1990년에 앞쪽에 현관을 만들면서 붉은 벽돌로 증축되었다. 내부의 강단과 아치형 나무 장식은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예배당과 함께 지어진 명동서숙은 종교 교육과 함께 국어, 수학, 한문 등 신자들을 교육하던 건물이다. 이 교회는 선교사나 단체가 아니라 교인의 선구적인 의지로 설립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