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찰

영월 법흥사

기리여원 2021. 5. 28. 09:19

영월 법흥사에 있는 지정문화재

 

1. 보물 제612호_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2.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2호_영월 징효국사 부도

3.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3호_영월 법흥사 부도

4.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9호_영흥 법흥사 석분

 

 

법흥사 극락전

 

사자산(獅子山) 법흥사(法興寺)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의 한 곳으로서 대표적인 불교성지이다. 신라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하고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가사(袈裟)를 전수받아 643년에 귀국하였다.

 

그 뒤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태백산 정암사(淨岩寺),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등에 사리를 봉안하고 마지막으로 이 절을 창건하여 진신사리를 봉안하였으며, 사찰이름을 흥녕사(興寧寺)라 하였다. 신라 말에 절중(折中)이 중창하여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사자산문(獅子山門)의 중심도량으로 삼았다. 당시 헌강왕은 이 절을 중사성(中使省)에 예속시켜 사찰을 돌보게 하였다.

 

그러나 891년(진성여왕 5) 병화로 소실되었고, 944년(혜종 1) 중건하였다. 그 뒤 다시 불타서 천년 가까이 소찰로서 명맥만 이어오다가 1902년에 비구니 대원각(大圓覺)이 몽감(夢感)에 의하여 중건하고 법흥사로 개칭하였다. 1912년에 다시 화재로 소실된 뒤 1930년에 중건하였으며, 1931년의 산사태에 옛 사지 일부와 석탑이 유실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적멸보궁을 비롯하여 대웅전·무설전(無說殿)·요사채 겸 공양실인 심우장(尋牛莊)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1939년에 중수하였으며, 법당 안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있다. 이 적멸보궁 좌측 뒤에는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하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토굴이 있고 좌측에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진신사리를 넣고 사자등에 싣고 왔다는 석함(石函)이 남아 있다.

 

적멸보궁 뒤에는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3호인 영월 법흥사 부도가 있다. 토굴은 낮은 언덕으로부터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흙으로 위를 덮었고, 봉토를 올리기 위하여 토굴 주변에 석축을 올렸다. 내부구조로 보아 고려시대에 축조 또는 보수된 것으로 추정되며, 내부의 높이는 160㎝, 깊이 150㎝, 너비 190㎝이다.

이 밖에도 보물 제612호인 영월흥령사징효대사탑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된 징효국사부도(澄曉國師浮屠)와 패엽경(貝葉經)이 있다. 이 중에서 패엽경은 종이가 없던 시절에 인도에서 영라수(靈羅樹) 잎에 경전을 기록하였던 것으로, 앞뒤 가득하게 범어로 쓰여져 있는 희귀한 것으로, 본래 금강산 마하연(摩訶衍)에 봉안되어 있던 것이었는데, 공산 치하를 피하여 한 승려가 남한으로 가지고 내려왔다.

 

그 후 30여년 동안 행방이 묘연하다가 부산의 한 절의 주지가 신도로부터 얻어 법흥사에 봉안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이 절에는 강원도 기념물 제6호인 흥녕선원지가 남아 있으며, 진신사리와 함께 패엽경을 친견하기 위하여 찾아오는 신도들의 발길이 항상 끊이지 않고 있다.

 

 

사자산 법흥사(獅子山 法興寺) 일주문

 

일주문은 신성한 사찰로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로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법흥사 일주문 기둥에는 코끼리와 거북이 형상으로 만들어졌는데 영원한 진리의 가르침으로서, 중생을 제도하기를 발원하며 사자산문을 일으키라는 뜻으로 조성되었다.

 

일주문 전면에는 사자산 법흥사(獅子山 法興寺) 편액과 

후면에는 사자산문 흥녕선원(獅子山門 興寧禪院) 편액이 걸려 있다.

 

이 편액은  부여출신 무림(霧林) 김영기(金榮基) 선생의 글씨입니다.

 

법흥사 전경

 

 

법흥사 전경

 

 

법흥사 건물 배치도

 

 

법흥사 표지판

 

 

법흥사 원음루(法興寺 圓音樓)

 

 

법흥사 포대화상

 

 

징효대사탑비 및 징효국사 부도

 

 

보물 제612호 _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타비(寧越 興寧寺止 澄曉大師塔碑)

 

흥녕사를 크게 발전시킨 징효대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석비로, 거의 완정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리고, 그 위에 용머리가 조각된 머릿돌을 얹었다. 받침돌의 거북머리는 용의 머리에 가깝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특히 발가락과 발톱은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어 눈에 뛴다. 반구형(半球形)에 가까운 등은 길쭉한 6각무늬로 채워져 있으며, 중앙에는 비를 꽂아두는 메모난 홈을 마련해 두었다. 머릿돌에는 네 마리의 용이 중심을 향해 마주보고 있다. 눈, 코, 입은 사실적으로 새겼으나 몸에 표현된 비늘은 약하게 새겨져 형식에 그치고 있다.

 

비문에는 징효의 출생에서부터 입적할 때까지의 행적이 실려 있다. 비문에 의하면 징효는 19세에 장곡사에서 승려가 되어 75세 되는 효공왕 5년(901)에 입적하였다. 끝부분에는 대사의 공적을 기리는 내용도 새겨져 있다.

 

이 비는 대사가 입적한지 44년 후인 고려 혜종 원년(944)에 세워진 비로, 글은 최언위가 짓고 최윤이 글씨를 썼으며 최오규가 비에 새겼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2호 _ 영월 징효국사 부도 (寧越 澄曉國師 浮屠)

 

통일신라의 승려인 징효국사의 사리를 모신 탑이다. 징효국사는 19세에 탁월한 총명으로 수행을 시작하여 효공왕 4년(901)에 75세로 입적하였다. 철선감사 도윤의 제자였으며 경문왕의 총애를 받기도 하였다.

 

부도는 기단부(基壇部) 위에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얹었으며, 각 부분이 8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기단은 아래 · 가운데 · 윗받침돌의 세부분으로 나뉜다. 아래받침돌에는 각 면에 안상(眼象)을 1구씩 얕게 새겼다. 가운데받침돌은 각면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둥근 윗받침돌은 연꽃무늬를 둘러놓았다. 탑신의 몸돌은 아래윗변의 모서리를 약간 죽인 듯 처리하였는데, 앞 뒷면에는 문짝 모양의 조각안에 자물통 모양을 표현해 놓았다. 지붕돌에는 급한 경사가 흐르고, 여덟 귀퉁이마다 꽃장식이 높게 달려 있다. 꼭대기에는 지붕을 축소한 듯한 위로, 공모양의 장식이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으나, 두꺼운 지붕돌표현, 지붕들의 높은 꽃장식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법흥사 극락전

 

극락전의 주불인 아미타불을 자기의 이상을 실현한 극락정토에서 늘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데, 이를 상징하는 극락전을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이라고도 한다.

 

극락전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법흥사 범종각(法興寺 梵鐘閣)

 

 

법흥사 조사전

 

 

법흥사 삼성각

 

 

법흥사 경내 전경

 

 

만다라전 내부

 

 

적멸보궁 가는 길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

 

 

법흥사 감로각

 

 

법흥사 적멸보궁앞 울창한 소나무

 

 

법흥사 적멸보궁

 

온갖 번뇌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 이란 뜻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전각을 말한다,

진신사리는 곧 부처와 동일체로, 부처님 열반 후 불상이 조성될 때까지 가장 진지하고 경건한 예배대상으로 부처님께서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법을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곳이다.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1939년에 중수하였으며, 법당 안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있다.

 

영월 법흥사 부도 및 석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3호 _ 영월 법흥사 부도 (寧越 法興寺 浮屠)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이 부도는 법흥사 적멸보궁 뒤쪽에 놓여 있는 것으로, 모신 사리의 주인공은 아직 밝혀 지지 않았다.

 

형태는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이루어진 기단부(基壇部)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갖추었으며,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넓고 네모진 바닥돌 위에 놓인 아래받침돌은 각 면마다 안상(眼象)을 새겼다. 가운데받침돌은 여덟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둘렀다. 탑신의 몸돌은 앞, 뒤 양면에 문짝모양을 새기고, 나머지 6면에는 1구씩의 신장상(神將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급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높게 달았다. 꼭데기에는 축소된 지붕모양과 꽃봉오리 모양을 조각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전체가 8각을 이룬 모습으로 두꺼운 지붕돌 표현이나 높은 지붕돌의 꽃장식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작품으로 보인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_ 영월 법흥사 석분 (寧越 法興寺 石墳)

 

법흥사 적멸보궁 뒤에 자리잡고 있는 석분이다.

 

바깥부분은 낮은 언덕에서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그리 높지 않은 봉토를 이루고 있다. 내부 돌방의 벽은 자연석의 평평한 면을 가려서 10단을 쌓았는데 6단까지는 수직이고 7단부터는 각을 줄여 쌓았다. 천장은 넓고 평평한 1매의 뚜껑돌로 덮어 놓아 내부전체가 거의 원형을 이루고 있다. 석분 뒷쪽에 돌로된 관이 있어서 이름 높은 스님의 사리 또는 유골을 모시던 곳일 수도 있으나, 기록에는 승려가 수도하던 토굴과 같은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전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법흥사 산신각

 

 

법흥사 약사전

 

 

법흥사 중대향각

 

 

적멸보궁에서 내려오는 아름다운 S자 곡선길

 

 

법흥사 삼소굴과 동별당

 

 

법흥사 흥령원(法興寺 興寧院)

 

 

종무소 앞에 위치한  다향원

 

 

법흥사 종무소

 

 

▼ 적멸보궁앞에 핀 메발톱입니다.

 

 

 

 

 

 

 

 

 

적멸보궁앞에 핀 메발톱

 

2021.05.22. 영월 법흥사

글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법흥사 홈페이지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문화재 > 사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혜의 기도 도량, 괴산 보광사  (0) 2021.08.11
예산 대련사  (0) 2021.07.16
서산 간월암  (0) 2021.05.19
남해 해관암  (0) 2021.05.14
남해 운대암  (0) 2021.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