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찰

예산 대련사

기리여원 2021. 7. 16. 10:45

예산 대련사에 있는 지정문화재

 

1. 보물 제2006호_예산 대련사 비로자나불 괘불도

2.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7호 _ 대련사 원통보전

3.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8호 _ 대련사 삼층석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7호 _ 대련사 원통보전 (大蓮寺 圓通寶殿) 

예산 봉수산 대련사(禮山 鳳首山 大蓮寺)

 

소재지 : 충남 예산군 광시면 동산리 11번지

백제 부흥의 한이 서린 임존산성이 예당호수를 내려 보는 절집, 예산 봉수산(鳳首山) 대련사 사찰에 가까운 임존산성 안에 연못(蓮塘)과 우물(蓮井)이 있어서 큰 연꽃이 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바로 대련사이다.

현재는 더 큰 연못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예당호수가 저 멀리 보이고, 절 앞에 위치한 늙은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700년을 훨씬 넘긴 고목이다. 닭 벼슬을 닮은 봉수산에 위치한 이 대련사는 백제와의 깊은 인연을 갖고 있는 사찰이다. 물론 백제 지역에 위치한 사찰 치고 백제 멸망의 슬픈 사연을 한처럼 지니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이 사찰은 백제가 신라에게 최후까지 항전을 했던 임존산성 가까이에 있어 더욱 신빙성이 높다.

대련사는 백제가 멸망하기 얼마 전인 의자왕 16년(656)에 의각(義覺)ㆍ도침(道琛) 두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이다. 더욱이 근처에 위치한 임존산성은 백제의 유민을 이끌어 백제 부흥군을 결성하고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물리쳤던 역사적인 곳인데, 이 때 부흥군을 지휘하여 끝까지 항전을 하게 했던 사람이 이 사찰을 창건한 도침스님이기 때문이다.

창건 이후로도 대련사는 통일신라 때인 845년(문성왕 7)에 무염(無染) 스님이 중창했다거나, 조선 후기 인조 때 중수했으나 숙종 때 화재로 당우 전체가 소실되었다가 영조 때 중수되는 등 그 역사가 깊다.
                                                                                                                       

   글 대한민국구석구석

 

대련사 표지판

 

 

대련사 일주문 역할을 하고 있는 600년된 두 그루의 느티나무 

 

 

대련사 전경

 

 

대련사 극락전 및 심검당

 

 

대련사 심검당(尋劍堂)

 

심검당은 절에서 승려들이 좌선하는 처소로 ‘지혜의 칼을 찾는 곳’이라는 뜻이다.

 

대련사 심검당(尋劍堂) 현판

 

이 현판은 덕숭총림(德崇叢林) 수덕사(修德寺) 방장(方丈) 원담진성(圓潭眞性, 1926~2008) 대종사(大宗師)의 글씨입니다.

 

대련사 요사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8호 _ 대련사 삼층석탑 (大蓮寺 三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05.17

 

대연사는 백제 의자왕 16년(656) 나·당연합군과 싸우다 전사한 장병들을 기리기 위해 도참선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대연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이 석탑은 2층 기단(基壇) 위로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1매의 네모진 널돌로 하여 바닥돌과 겸하고 있는 단순한 형태이다. 위층 기단 윗면에는 탑신의 1층 몸돌을 괴기위한 받침을 두었다. 탑신의 몸돌은 각 층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1층과 2층 지붕돌은 경사면의 경사가 급하게 처리되어 있고 네 귀퉁이는 들림이 없이 완만하며, 밑면에는 1층이 2단, 2층이 3단이고 3층은 다시 2단의 받침을 두었는데, 마모된 부분이 없어 후대에 보완된 것으로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현재 탑신은 4개의 몸돌과 4개의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체적인 모습이 부자연스럽고, 3층 지붕돌이 다른 부분과 재질이 달라 후대에 와서 탑을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 높직한 탑신받침이나 두꺼운 지붕돌 처리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짐작되나 탑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대련사 삼층석탑 (大蓮寺 三層石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_ 대련사 원통보전 (大蓮寺 圓通寶殿)

 

수   량 : 1동

지정일 : 1981.05.17

 

대연사는 백제 의자왕 16년(656)에 고승인 의각과 도침이 세운 절로 고려시대의 역사는 전하지 않고,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보수하고 고쳐 세운 기록이 남아 있다. 대연사 경내 건물로는 원통보전을 비롯하여 노전, 산신각, 요사채가 있다.

 

원통보전을 지은 시기는 알 수 없고, 1975년 보수 당시 건물에 관해 기록한 상량문과 ‘극락보전’이라고 쓰인 현판을 발견하여, 인조 25년(1647)에 보수되었고 그 뒤 한 차례 더 수리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 원통보전의 현판은 ‘극락전 ’으로 되어 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며, 양 옆에 바람막이 풍판을 달아 놓았다

 

대련사 극락전

 

극락전은 죽은 사람을 극락세계로 안내하여 그 영혼을 구제하는 아미타불을 모신 곳이다.

 

대련사 극락전

 

 

1975년 원통보전에서 극락전으로 바뀐 현판

 

 

극락전 내부에는  중앙에 아미타불, 좌측에 관음보살, 우측에 대세지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보물 제2006호 _ 예산 대련사 비로자나불 괘불도 (禮山 大蓮寺 毘盧遮那佛 掛佛圖) 

 

수   량 : 괘불 1폭, 괘불함 1점

지정일 : 2018.11.27

 

‘예산 대련사 비로자나불 괘불도’는 1750년(영조 26) 축명, 사혜 등 4명의 화승이 조성한 것으로, 세로로 긴 화면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에 배치하고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상하로 그려 오존(五尊) 형식을 취한 구도이다. 축명을 비롯해 이 괘불 조성에 참여한 화원들은 대부분 1741년(영조 17) ‘천안 광덕사 삼세불도 및 괘불도’를 제작한 인물들로서, 얼굴에 비해 좁은 어깨, 뾰족한 육계, 턱이 둥글고 살진 보살의 얼굴, 길쭉한 귀 등에서 공통적인 화풍(畵風)을 찾아 볼 수 있다. 일목요연한 구도와 날씬하고 비례가 적당한 인체표현, 붉은색, 하늘색, 분홍색 등 밝고 부드러운 색채의 사용 등은 18세기 전반 충청도 지역 불화 양식을 계승했음을 잘 보여준다.

19세기 이전 조성된 비로자나불 괘불도는 남아있는 예가 거의 없으며, 현존하는 작품은 석가모니불, 노사나불과 함께 삼신불(三身佛)로 구성된 것이 일반적이다. 이 괘불도는 유례가 드믄 오존(五尊)으로 구성된 작품이자 18세기 중엽 충청도지역의 괘불 제작 경향이 잘 반영된 작품으로서 조선 후기 불화 연구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사진  문화재청

대련사 산신각(山神閣)

 

 

600년 된 두 그루의 느티나무

 

2021.06.27. 예산 대련사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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