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강원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5호_육절려

기리여원 2021. 6. 20. 04:57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5호 _ 육절려 (六節閭)

 

수   량 : 1동

지정일 : 1981.08.05

소재지 : 강원 횡성군 공근면 공근남로169번길 92-7 (매곡리)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 숨진 진주목사 서예원을 비롯한 그의 일가족 6명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서예원은 조선 선조 26년(1593) 왜적의 2차 침입 때 적은 군사와 무기를 가지고 진주성을 굳게 지키다 결국 전사하였다. 그의 부인 이씨와 큰아들 계성, 며느리 노씨 그리고 어린 딸도 밤낮으로 군사들을 도우며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둘째 아들 계철은 강에 몸을 던졌으나, 왜적에게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13년 뒤에 돌아올 수 있었다.

 

숙종 4년(1678)에 서씨 가족의 충절이 밝혀진 후, 숙종 18년(1692) 일가족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 정려각을 세웠다.

 

앞면 4칸·옆면 1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10개의 원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네벽은 붉은색을 칠한 긴 나무막대를 돌려 세웠다.

 

육절려 표지판

 

 

육절려 전경

 

 

육절려 전경

 

 

2017년 3월에 이천서씨 명암공파 종친회가 세운 육절려 건립자 이천 서공탁심 공적 숭모비

 

 

보호수인 수령이 390년 된 느티나무

 

 

육절려 전경

 

 

육절려 정문

 

 

육절려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 숨진 진주목사 서예원을 비롯한 그의 일가족 6명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순조 때에 내린 정려(旌閭)와 각판(刻板)을 걸어 놓은 곳이다.

 

서예원(徐禮元, 1548~1593)

 

서예원(徐禮元, 1548년~1593년 6월 29일)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이천(利川), 자는 숙부(肅夫)이다. 서인원(徐仁元)의 동생이다.

 

1572년(선조 5) 무과에 급제했으며, 1585년 선조 18년 회령의 보을하진첨절제사(甫乙下鎭僉節制使)로 정탐의 임무를 띠고 두만강을 건너 오랑캐 땅에 깊이 들어갔으나, 80여명의 부하를 모두 잃고 패주한 죄로 종성(鐘城)에 수감되었다.

80명의 부하를 잃고 혼자서 살아오자 조헌은 서예원이 장수의 첩을 간음하여 무인들로부터 개돼지 취급을 받았고, 이로 인해 여러 해 동안 과거 응시를 정지당하여 그의 형 서인원이 수습하여 합의한 경력을 들어 심하게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린다.

그 뒤 석방되어 김해부사로 있을 때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이 일어나 성을 수비하던 중 적이 보리를 베어다가 성의 높이와 같게 쌓고 쳐들어오자 패주하였다.

그 뒤 의병장 김면(金沔)과 협력하여 지례의 왜적을 격퇴하고,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목사 김시민(金時敏)을 도와 왜적과 항전하여 큰 공을 세운다.

 

 

 육절려 (六節閭)

 

육절려의 건물규모는 앞면 4칸·옆면 1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10개의 원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네벽은 붉은색을 칠한 긴 나무막대를 돌려 세웠다.

 

육절려 측면

 

 

육절려 정면

 

 

육절려 (六節閭) 현판

 

 

육절려 내부에 걸려 있는 정려(旌閭)와 각판(刻板)

 

 

육절려 전경

 

2021.06.18. 횡성 매곡리 육절려

글 문화재청, 워키백과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