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비지정문화재

예산 헌종대왕 태실, 헌종 태봉도

기리여원 2021. 7. 1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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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대왕 태실(憲宗大王 胎室)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산6-2 소재

 

이 곳은 조선 제24대 헌종(1827~1849)의 태(胎)를 안장한 태봉(胎封)이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왕의 자손이 태어나면 태를 백자항아리에 보관하였다가 좋은 날을 택하여 풍수적 의미를 배려한 길지를 찾아 봉안했다. 이는 아기의 무병장수와 왕실의 기복번창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제가 강제병합 후 왕실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이왕직(李王職 -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왕족을 관리하던 직제)' 이란 기관을 설치하고 1928년 전국에 안치된 조선 왕의 태 53기를 파헤쳐 서삼릉으로 옮겼을 때 이곳 태실도 훼손당했다. 태실의 무늬와 모양은 조선시대 풍수와 미술양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곳 표지판에서 좌측으로 230m 올라가시면 됩니다.

 

 

비닐하수스와 개집 사이 소로길 따라 가다가 바로 좌측으로 올라가시면 헌종대왕 태실이 보입니다.

 

 

조선 제24대 임금 헌종(憲宗)의 태실(胎室)을 조성하고 그린 그림

 

 

보물 제2174호 _ 헌종 태봉도

 

수    량 : 1폭

지정일 : 2022.08.26

소재지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운중동, 한국학중앙연구원)

시   대 : 1847년(헌종 13) 경

 

‘헌종 태봉도’는 헌종이 1827년에 태어난 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에 태실을 만들어 태를 안치한 태실과 주변 경관을 그린 작품이다.

헌종이 1834년 즉위한 후, 13년이 지난 1847년에서야 태실가봉(胎室加封)이 이루어졌으며, 이 그림은 당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1847년에 이루어진 태실가봉 과정은『(헌종)성상태실가봉석난간조배의궤(聖上胎室加封石欄干造排儀軌)』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화면은 전경(前景), 중경(中景), 후경(後景)의 구성을 적용한 전형적인 산수화 구도를 보여준다. 전경에는 지붕이 보이는 마을이 있고, 중경에 송림에 둘러싸인 가봉태실을 가운데 배치하고, 원경에는 주봉과 멀리 보이는 먼 산을 소략하게 그렸다. 화면의 가운데에 태실을 표현하고, 그 주위로 산수풍경을 효과적으로 배열했다. 태실의 아래편에는 무성한 나무숲을 채워 넣고, 그 위의 주위 배경은 여백으로 비워 놓아서 태실을 돋보이도록 했다. 태실은 연꽃지붕이 있는 개첨석(蓋簷石)이 얹힌 중동석(中童石)과 팔각의 난간석이, 앞쪽에 놓인 귀농대석(龜籠臺石) 받침에 표석(標石)이 세워진 모습 등 상세히 표현되었다. 이 그림은 다른 태봉도와 달리 지도식 표현이 거의 없고 산수화풍이 많이 가미된 것이 특징이다. 능숙한 필치로 괴량감 넘치는 산봉우리를 표현했고 부드러운 색채로 입체감을 나타냈다. 옅은 청색과 연두색을 효과적으로 구사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잘 표현하였다. ‘헌종 태봉도’는 삼국시대부터 이어지던 장태(藏胎) 문화를 의례화시켜 새로 태어나는 왕자녀의 태를 길지(吉地)에 묻는 독특한 안태의례(安胎儀禮)를 정착시킨 조선왕실의 전통을 보여주는 작품이자, 장조의 태실을 그린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역사성ㆍ희소성이 돋보인다. 아울러 제작 동기와 제작 시기가 분명하고 태실과 관련된 왕실 회화로서 역사ㆍ미술사적 가치가 높다.

 

글 문화재청

 

헌종대왕 태실(憲宗大王 胎室)

 

 

헌종대왕 태실비(憲宗大王 胎室碑)

 

태실비에는 이수와 비신은 없고 귀부만 남아 있습니다.

2015.09 예산 옥계저수지에서 헌종대왕 태실비 반쪽을 발견하여 인양하였다

 

헌종대왕 태실비

 

조선 제24대 헌종대왕 태실비가 인양됐다. 비록 반쪽 이지만 1970년대 훼손돼 사라진지 40여년 만에 세상 빛을 보게 됐다.

 

22일 예산군과 가야산 인근주민들에 따르면 보름여간의 수중작업 끝에 지난 20일 옥계저수지에서 헌종 태실비를 인양하는데 성공했다. 다만 당초 태실비의 크기는 비신과 상단의 전면과 측면이 용두마리가 표현된 상단까지 대략 150cm정도였지만 아쉽게 상단은 없어진 상태로 인양됐다.

 

헌종대황의 태실은 일제강점기 때인 1927년부터 서삼릉(西三陵)으로 어태(御胎)를 이안한 후 파괴된 채로 현재까지 방치됐으며, 이날 수중에서 인양한 태실비는 1970년대 초에 훼손돼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글. 사진  2015.08.22, 굿모닝 충정

 

거북모양의 바침돌인 귀부

 

 

귀부 좌측면

 

 

헌종대왕 태실(憲宗大王 胎室)

 

 

헌종대왕 태실(憲宗大王 胎室)

 

 

헌종대왕 태실(憲宗大王 胎室)

 

 

헌종대왕 태실(憲宗大王 胎室)과 태실비 귀부

 

* 2023.01.07일 Upgrade

2021.06.27. 예산 헌종대왕태실

'청허(淸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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