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조선왕릉

사적 제201호_서울 태릉과 강릉(2016.11.13)

기리여원 2016. 11. 16. 08:46

 

사적 제201호 _  서울 태릉과 강릉 (서울 泰陵과 康陵)       


태릉(泰陵)

조선 제11대 중종의 제3계비 문정황후의 능


문정왕후(文定王后, 1501~1565)는 파산부원군 윤지임의 딸로 중종의 제1계비인 장경왕후가 1515년(중종 10)인종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7일 만에 승하하자, 1517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중종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 명종이 12세에 왕위에 오르자 어린 명종을 대신하여 8년 간 수렴청청하며 권력을 행사하였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문정왕후는 승려 보우를 앞세워 불교 중흥을 위해 노력했다. 1565년(명종 20)4월7일 창덕궁 소덕당에서 65세로 승하하였다.


* 태릉 연혁

- 1565년(명종 20) 문정왕후 안장(단릉 조성)


*태릉 제향일

- 매년 5월 16일 (양력)


사적 제201호 _  서울 태릉과 강릉 (서울 泰陵과 康陵)       


강릉(康陵)

조선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의 능


명종 (明宗, 1534~1567, 재위1547~1567)은 제11대 중종의 둘째 아들로 1545년에 인종이 승하하자 12세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20세까지 어머니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1553년(명종 8)수렴청정을 거두고 친정을 하며 외척을 견제하고 고른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혼란하였다. 1563년 외아들 순회세자를 잃고, 2년후에 어머니 문정왕후마저 세상을 뜨자 병약했던 명종은 병을 얻어 1567년(명조 22) 6월 28일 경복궁 양심당에서 승하하였다.

인순왕후(仁順王后, 1532~1575)는 청릉부원군 심강의 딸로 1543년(중종 38) 경원대군(명종)과 가례를 올리고 1545년(인종 1)명종이 즉위하면서 왕비로 책봉되었다


* 강릉 연혁

- 1567년(선조 즉위년) 명종 안장, 강릉 조성

- 1575년(선조8년) 인순왕후 안장 (쌍릉 조성)


* 강릉 제향일

- 매년 4월 넷쨰 일요일(양력)

 

 

 

 

 

 

 

 

 

 

 

 

 

 

 

조선왕릉 전시관

 

 

 

 

 


 


 

 

 

 

 

 

울창한 소나무림

 

 

태릉의 소나무 숲은 신림(神林)으로 여겨질 만큼 역사가 깊고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태릉의 소나무 숲은 도시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생태 문화적 자원이다.

 

 

 

 

사적 제201호 _ 서울 태릉과 강릉 (서울 泰陵과 康陵)        

 

수   량 : 1,619,903㎡

지정일 : 1970.05.26

소재지 : 서울 노원구 화랑로 681 (공릉동)

시   대 : 조선시대

 

태릉은 조선 제11대 중종(재위 1506∼1544)의 세번째 왕비인 문정왕후 윤씨(1501∼1565)의 무덤이다.

본관은 파평으로 중종의 두번째 왕비인 장경왕후가 1515년 죽자 1517년에 17세의 나이로 왕비가 되었다. 중종이 있는 정릉에 묻히려 하였으나 장마철 침수로 인하여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무덤은 십이지신과 구름무늬가 새겨진 12면으로 된 병풍석이 둘러져 있다. 무덤 앞에는 상석·망주석 등이 『국조오례의』에 따라 제작되었다.

무덤 아래에는 한국 전쟁시 훼손되었다가 1995년 다시 지은 정자각이 있다. 사람모양의 돌조각상(석인)은 4등신으로 입체감이 표현되지 않았는데, 당시 석인의 특징을 보여준다.

강릉은 조선 제13대 명종(재위 1545∼1567)과 그의 부인인 인순왕후 심씨(1532∼1575)의 무덤이다. 태릉과 같은 병풍석이 둘러져 있다.

 




홍살문앞에서 바라본 태릉의 전경

 

 

 

 

 

 

 

 

 

 

 

태릉 정자각

 

 

릉 홍살문

 

 

 수복방

 

 

 조선 제11대 중종의 제2계비 문정황후의 비각

 

 

 조선 제11대 중종의 제2계비 문정황후의 비문

 

 

 

 

 

태릉(제11대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 윤씨의 능, 단릉)


태릉(泰陵,제11대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 윤씨의 능, 단릉)


문정왕후(文定王后, 1501~1565)는 1517년(중종 12)에 왕비로 책봉되었고, 1545년에 아들 명종이 12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8년간 수렴청정을 하였다. 동생 윤원형과 함께 국정을 이끌었으며 을사사화를 일으켜 반대파를 제거하였다. 불교에 관심을 두어 불교부흥에 앞장서가도 하였다.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수렴청정 : [역사] (왕대비 대왕대비)나이 어린 임금 도와 국사 돌보다


태릉(제11대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 윤씨의 능, 단릉)


 

 

 

 

태릉 예감


제를 지내고 난후 지방을 태우고 묻는곳. 뚜껑은 어디로 갔을까?

 

 

 

 

 

 

 

 

 

 

 

 

 

강릉으로 가는 숲속의 길


 

 

 

 

 강릉으로 가는 숲속의 길

 

 

 

 

 

 강릉으로 가는 숲속의 길

 

 

 

 

 

 ▼ 여기서부터는 강릉입니다.

 

 

 

사적 제201호 _ 서울 태릉과 강릉 (서울 泰陵과 康陵)   

 

지정일 : 1970. 05.26

시대 : 조선시대

 

강릉은 조선 제13대 명종(재위 1545∼1567)과 그의 부인인 인순왕후 심씨(1532∼1575)의 무덤이다. 태릉과 같은 병풍석이 둘러져 있다.

 

 

 

 

 

 

초등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문화해설사로부터 설명을 진진하게 듣고 있습니다.

 

 

 

 

 

 

 

 

 

 

 

 

 

 

 

 

 

강릉 정자각

 

 

 강릉 정자각

 

 

 

 

 

 

 

 

 

 

 

 

 

 

 

 

 

 

 

 

강릉 비각

 

 

 

 

 

 

 

 

수복방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능(쌍릉)


깅릉(康陵,조선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의 능)


명종(明宗, 1534~1567)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어머니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고, 친정(親政)이후에도 국정은 문정왕후에 의해서 좌우되었다. 이로 인해 정국이 불안정하여 매관매직이 빈번하였으며 사회적으로 불안하여 임꺽정의 난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인순왕후(仁順王后, 1532~1575)는 명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1551년(명종 6)에 아들 순회세자를 낳았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명종이 세상을 떠나자 조카 하성군(선조)를 양자로 입적시켜 왕위에 올렸고 선조 즉위 초에 8개월간 수렴청정하였다.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능(쌍릉)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능(쌍릉)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능(쌍릉)

 

출처 카다록,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