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조선왕릉

사적 제198호_고양 서오릉(2016.12.04)

기리여원 2016. 12. 14. 14:36

고양 서오릉(高陽 西五陵)


 서오릉은 '한양(서울)을 중심으로 서쪽 에 다섯 기의 능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추존 덕종과 소혜왕후의 경릉(敬陵), 8대 예종(재위 1468~1469)과 인순왕후의 창릉(昌陵), 19대 숙종(재위 1674~1720)과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의 명릉(明陵), 숙종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 익릉(翼陵), 21대 영조의 천번째 왕비 정성왕후의 홍릉(弘陵)을 일컫는다.


그 밖의 조선시대에 조성한 13대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와 공희빈의 순창원이 있고, 1960년대에 이장한 추존 장조(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의 수경원과 20대 경종의 어머니 옥산부대빈(희빈) 장 씨의 대빈묘가 있다.


1970년대 사직 제198호로 지정,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경릉(敬陵) 

          추존 덕종과 소혜왕후의 능

창릉(昌陵)

          조선 제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능

익릉(翼陵)

          조선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능 

명릉(明陵)

          조선 제19대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제2계비 인원왕후의 능

홍릉(弘陵)

          조선 제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능

순창원(順昌園)

          조선 제13대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원

수경원(綏慶園)

          조선 제21대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 장조(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의 원

대빈묘(大嬪墓)

          조선 제19대 숙종의 후궁이자 20대 경종의 어머니 옥산부대빈 장씨(장희빈)의 묘


 숙종 . 인현왕후 . 인원왕후 명릉 _ 동원이강형

사적 제198호 _ 고양 서오릉 (高陽 西五陵)   

면   적 : 1,870,267㎡

지정일 : 1970.05.26    

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475-92번지

시   대 : 조선시대

서오릉(西五陵)은 동구릉(東九陵) 다음으로 규모가 큰 조선왕실의 왕릉군으로, 5기의 능으로 구성되어 있다. 1457년(세조 3) 세조의 장자 의경세자(덕종)의 묘(현 경릉)를 처음으로 만든 이후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면서 경릉(敬陵)이라고 개명하고, 덕종비 소혜왕후가 훗날 경릉에 같이 안장된다. 이후 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창릉(昌陵), 19대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의 익릉(翼陵),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제2계비 인원왕후의 명릉(明陵), 21대 영조의 원비인 정성왕후의 홍릉(弘陵)이 차례로 조영되었다.

조선왕실의 무덤은 묻힌 사람의 신분에 따라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陵)’, 왕의 생모·왕세자·빈의 무덤은 ‘원(園)’, 대군·공주 등의 무덤은 ‘묘(墓)’로 구분되어 불렸다. 서오릉에는 5기의 능 이외에도 조선왕조 최초의 ‘원’인 명종의 장자 순회세자의 묘 순창원(順昌園), 21대 영조의 후궁으로 사도세자(장조)의 어머니인 영빈이씨의 묘 수경원(綏慶園), 19대 숙종의 후궁이자 20대 경종의 어머니인 희빈 장씨의 묘 대빈묘(大嬪墓)가 들어서 있다.

경릉은 동원이강(東原異岡)의 형식이다. 능침의 배치는 왕이 우측에, 왕비가 좌측에 모셔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경릉은 왼편에 왕릉이, 오른편에 왕비릉이 있다. 경릉의 왕비릉은 능제가 왕릉의 형식을 갖춘데 비하여 왕릉은 상대적으로 간소하다. 이는 덕종이 세자에 있을 때 죽었기 때문이고, 소혜왕후는 덕종의 추존에 따라 대비에 책봉된 후 죽었기 때문이다.

창릉은 서오릉의 영역 내 왕릉으로 조영된 최초의 능이다. 능침에 병풍석을 세우지는 않았으나 봉분 주위에 난간석을 두르고 있다. 석물 배치는 일반 왕릉과 같고, 양쪽 능침 아래 중간에 정자각과 홍살문을 잇는 축의 양 옆으로 수라간, 수복방 등이 대칭하여 배치되어 있다.

익릉의 봉분은 병풍석은 생략하고 난간석을 둘렀으며, 다른 왕릉과는 조금 다르게 석주가 아닌 동자석 상단부에 십이간지를 글자로 새겨 놓았다. 정자각은 능침 언덕 아래에 있다. 현종의 숭릉 정자각과 같이 당시 유행하던 익랑이 딸려 있다. 정자각과 홍살문 사이의 향어로는 직선으로 경사가 졌으며, 중간에 계단을 두어 지형에 맞춰 설치하였다.

명릉은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이 쌍릉으로 나란히 조영되고, 인원왕후의 능은 다른 편 언덕에 단릉 형식으로 모셔져 동원이강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명릉은 일반적인 왕릉과 달리 명릉에서 가장 낮은 서열의 인원왕후의 능이 가장 높은 자리인 오른쪽 언덕에 모셔져 있다. 명릉은 숙종의 명에 의해 능역에 드는 인력과 경비를 절감하여 부장품을 줄이고 석물 치수도 실물 크기에 가깝게 하는 등 간소한 제도로 조영되었다.

홍릉은 영조의 첫 번째 비인 정성왕후의 능이다. 영조는 정성왕후의 능지를 정하면서 장차 함께 묻히고자 왕비의 능 오른쪽에 자리를 비워두고 능의 석물 등을 쌍릉의 형식에 맞추어 배치하였다. 그러나 영조의 능은 정순왕후와 함께 동구릉에 자리 잡게 되었고, 홍릉의 오른 편은 현재 빈 상태로 석물만 쌍릉 양식으로 남아 있다. 홍릉의 봉분에는 병풍석은 없으나 난간석이 설치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숙종의 명릉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의 제도가 잘 반영되어 있다.

           










사적 제198호 _ 고양 서오릉 (高陽 西五陵)   












 사오릉 역사문화관









 명릉


명릉(明陵)

조선 제19대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제2계비 인원왕후의 능


숙종(肅宗, 1661~1720, 재위 1674~1720)은 제18대 현종의 아들로 1674년에 현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숙종 대의 조선 정치는 그 어느 때보다 정쟁이 심했지만, 숙종은 각 붕당의 정쟁 위에서 왕권을 강화하고 사회체제 전반을 정비하는 큰 공적을 남겼다.

인현왕후(仁顯王后, 1667~1701)는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딸로,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1681년(숙종 7)가례를 올리고 숙종의 두번째 왕비가 되었다. 인현왕후는 기사환국(1689년)으로 폐위되었다가 갑술환국(1694년)때 복위되었다.

인원왕후(仁元王后, 1687~1757)는 경은부원군 김주신의 딸로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1702년(숙종 28)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영조가 왕위에 오른 후 대왕대비가 되었다.

 

- 1701년(숙종 27) 인현왕후 안장, 명릉 조성

- 1720(경종 즉) 숙종 안장

- 1757년(영조 33) 인원왕후 안장

- 제향일 : 매년 5월 12일(양력)








명릉 정자각















▼ 여기서부터는 익릉입니다.

익릉( 翼陵)


익릉(翼陵)

조선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능


인경왕후(人敬王后, 1661~1680)는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딸로 1671년(현종 12)11세 때 세자빈이 되었다가 1674년 숙종이 왕위에 으르자 왕비가 되었다. 20세 때 천연두를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공주 둘을 두었으나 모두 오래 살지 못했다.


- 1681년(숙종 7) 인경왕후 안장, 익릉 조성

- 제향일 : 매년 11월1일(양력)



 익릉( 翼陵)



익릉 정자각




조선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능



소나무길을 걸으면서 창릉으로 갑니다..












창릉(昌陵)


창릉(昌陵)

조선 제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능


예종(睿宗, 1450~1469, 재위1468~1469)은 제7조 세조의 둘째아들이다. 세자였던 형(의경세자, 덕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세자로 책봉된 후 19세에 왕위에 올랐다. 예종은 재위1년 2개월 동안 각 도의 병영에 속한 전답인 둔전을 일반 농민이 경작하게 하여 백성들을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나게 하는등의 업적을 세웠다.

안순왕후(安順王后, ?~1498)는 청천부원군 한백륜의 딸로, 1463년세조 9)에 세자 후궁소훈(昭訓)이 되었고, 1468년 예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 1470년(성종 1) 예종 안장, 창릉조성

- 1499년(연산군 5) 안순왕후 안장, 동원이강릉으로 조성

- 제향일 : 매년 4월 16일 (양력)








창릉(昌陵) 정자각



▼ 여기서부터는 홍릉입니다.

홍릉(弘陵)


홍릉(弘陵)

조선 제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능


정성왕후(貞聖王后 1692~175)는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딸로 1704년(숙종 30)  숙종의 둘째아들인 연잉군(영조)과 가례를 올렸다. 1724년(경종 4) 경종이 세상을 떠나고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평생 숙종과 경종의 왕비를 극진히 모시며 내명부를 지켰다. 1757년(영조 33)에 소생 없이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 1757년(영조 33) 정성왕후 안장, 홍릉 조성

- 제향일 : 매년 4월 3일(양력)


홍릉(弘陵) 정자각






홍릉(弘陵) 정자각



경릉(敬陵) 

     

 경릉(敬陵) 

 추존 덕종과 소혜왕후의 능

   덕종(德宗, 1438~1457)은 제7대 세조의 맏아들로 1455년(세조 1)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하기 전 20세에 세상을 떠났다. 의경세자(덕종)는 둘째 아들 성종이 임금되면서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소혜왕후(昭惠王后, 1437~1504)는 서원부원군 한확의 딸로 1455년에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1457(성종 6)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자 인수대비가 되었다. 성품이 총명하고 학식이 깊어

     부녀자들의 예의 범절을 가르치는 <내훈(內訓)>을 책으로 펴내고 한문 불경을 한글로 풀어쓰기도 했다.


  - 1457년(세조 3) 의경세자 안장, 세자묘로 조성

  - 1470년(성종 1) 경릉으로 높임

  - 1504년(연산군 10) 소혜왕후 안장, 동원이강릉으로 조성

  - 제향일 : 매년 10월 셋째 주 토요일(양력)





 경릉(敬陵)  정자각






▼ 여기서부터는 수경원입니다.



수경원(綏慶園)


수경원(綏慶園)

조선 제21대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 장조(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의 원


영빈 이씨(映嬪 李氏, 1696~1764)는 이유번의 딸로 1701년(숙종 27)에 궁녀가 되었고, 영조의 후궁이 되어 1730년(영조 6)에 영빈이 되었다. 영조 사이에서 1남 6녀를 낳았으며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대한제국 선포 후인 1899년(광무 3)에 사도세자가 장조의 황제로 추존되자 영빈도 추존되어 시호를 소유(昭裕), 원호를 수경원이라 하였다.


- 1764년(영조 40) 의열묘 조성

- 1899년(광무 3) 원호를 수경원이라 함

- 1970년 서오릉 경내로 이장

- 제향일 : 매년9월 둘째 주 일요일(양력)





수경원(綏慶園)






 ▼ 여기서부터는 대원묘입니다.                                                                


    

 대빈묘(大嬪墓)          


대빈묘(大嬪墓)

조선 제19대 숙종의 후궁이자 20대 경종의 어머니 옥산부대빈 장씨(장희빈)의 묘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 1659~1701)은 장혁의 딸로 1686년(숙종 12)에 숙종의 후궁이 되었고, 1688년(숙종 14)에 경종을 낳아 희빈(禧嬪)이 되었다. 기사환국(1689년)으로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가 갑술환국(1694년)때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었다.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난 후 왕후를 무고한 죄로 43세로 세상을 떠났다. 경종이 왕위에 오른 후 옥산부대빈으로 추존되었다.


- 1702년(숙종 28) 희빈장씨묘 조성

- 1722년(경종 2) 대빈묘라 함

- 1969년 서오릉 경내로 이장

- 제향일: 매년 11월 9일(양력)


 대빈묘(大嬪墓)          



대빈묘(大嬪墓)          



▼ 여기서부터는 순창원입니다

순창원(順昌園)


순창원(順昌園)

조선 제13대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원


순회세자(順懷世子, 1551~1563)는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의 아들로 7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3세에 세상을 떠났다. 공회빈(恭懷嬪, 1552?~1592)은 윤옥의 딸로 1561년(명종 16)에 세자빈이 되었으나 순회세자가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왕비가 되지 못하였다








순창원 정자작








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