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조선왕릉

사적 제197호_남양주 광릉(2016.12.04),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

기리여원 2016. 12. 7. 18:15


세조.정희왕후   광릉


광릉 (光陵)

조선 제7대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


세조(世祖, 1417~1468, 재위1455~1468)는 제4대 세종의 둘째 아들로 1453년(단종1) 계유정란으로 권력을 잡고 1455년 조카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자 왕위에 올랐다. 세조는 병약한 문종과 어린 단종을 거치며 떨어졌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왕과 육조(이,호,예,병,형,공조)를 직접 연결하는 육조직계제를 부활시겼으며 호적.호패제를 강화했다. 진관체제를 실시해 전국 방위체제를 수립하고 중앙군을 5위로 개편했다. 1460년, 1467년 두 차례에 걸쳐 북방의 여진족을 소탕하는 등 국방도 튼튼히 했다. 각종 법전을 정비하고 조선의 공식 통치규범인 <경국대전>을 편찬하기 시작했다. 1468년(세조 14) 9월8일 수강궁(옛 창경궁)정침에서 승하하였다.


정희왕후(貞熹王后, 1418~1483)는 판중추부사 파평부원군 윤번의 딸로 1428년(세종10) 세조와 가례를 올리고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장남 의경세자(덕종)가 20세에 요절한 뒤 차남 예종이 19세에 즉위하였으나 예종마저 제위 1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성종)을 왕위에 올리고 13세 성종을 대신하여 7년 동안 수렴청정하였다.



* 광릉 연혁

- 1468년(예종 즉위년) 세조 안장, 광릉 조성

- 1483년(성종 14) 정희왕후 안장, 동원이강령으로 조성


*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이봉이실(二封二室)의 능


사적 제197호 _ 남양주 광릉 (南楊州 光陵)   


지정일 : 1970.05.26

시   대 : 조선시대


광릉은 조선 7대 대왕인 세조(재위 1455∼1468)와 부인 정희왕후 윤씨(1418∼1483)의 무덤이다.

세조는 세종의 둘째 아들로 형인 문종이 세상을 떠난 후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계유정란을 일으킨 후에 1455년에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 세조는 군제 개편·집현전 폐지 등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토지제도 정비·서적간행 등 많은 업적을 남기고, 1468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희왕후 윤씨는 조선시대 최초로 수렴청정을 시행하였다. 수렴청정은 나이 어린 임금을 대신해서 왕대비가 정치를 대신하는 것으로 당시 성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므로 정사를 돌보게 된 것이다. 정희왕후는 성종14년(1483)에 세상을 떠났다.

왕의 유언에 따라서 무덤방은 돌방을 만드는 대신 석회다짐으로 막았고, 무덤 둘레에 병풍석을 세우지 못하게 하였다. 돌방과 병석을 없앰으로해서 백성의 고통과 국가에서 쓰는 돈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무덤 주위에는 난간석을 세우고 그 밖으로 문석인·무석인·상석·망주석·호석·양석을 세웠다. 난간석의 기둥에는 십이지신상을 새겼는데 이는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광릉 밖에 없으며, 글자로 난간석에 표시하거나 나중에는 24방위까지 새겨 넣게 된다.

무덤배치에 있어서도 최초의 동원이강의 형식이다. 지금까지는 왕과 왕비의 무덤을 나란히 두고자 할 때는 고려 현릉·정릉 식의 쌍릉이나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무덤인 영릉의 형식으로 왕과 왕비를 함께 묻는 방법을 취하였으나, 광릉은 두 언덕을 한 정자각으로 묶는 새로운 배치로 후세의 무덤제도에 영향을 끼쳤다.

세종의 구 영릉이 조선 전기 왕릉 제도를 총정리한 것이라 한다면, 광릉은 조선 전기 왕릉 제도의 일대변화를 이룬 조선 왕릉 제도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광릉 입구









광릉입구 매표소


주차비 2,000원, 입장료1,000, 계3,000


왕릉 역사문학관






남양주 광릉 (南楊州 光陵) 안내도












광릉 재실






광릉 재실
























조선 왕릉 유일의 하마비


광릉 초입에는 조선왕릉에서는 유일하게 하마비가 남아 있다. 선왕선비를 모시는 제사를 주관하기 위해 친행을 한 왕조차도 이곳 하마비에서부터는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야 했다.








하마비에서 홍살문까지 좌우 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걷기 좋은 아름다은 흙길입니다.






 태풍 곤파스 피해목인 전나무 잣나무들로 흙으로 변하는 기간을 실험하는 나무입니다.















홍살문사이로 보이는 광릉 정자각



                                                                   






광릉 정자각












조의 능



정희왕후 능






광릉 비각









조의 능



정희왕후 능

















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