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경기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_사나사 원종국사석종비

기리여원 2021. 8. 23. 16:40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 _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 (舍那寺 圓證國師 石鐘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78.10.10

소재지 : 경기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304번지

시   대 : 고려 우왕 12년(1386)

 

양평 사나사는 용문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고려 초기 크게 활약했던 대경(大鏡) 대사가 제자였던 융천(融闡) 등과 함께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사나사는 보우가 중창하였는데, 조선 시대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었다가 다시 중건되었다. 사나사 경내의 동편에 있는 비각 안에 원증국사 석종비가 있고, 나란히 석종이 건립되어 있다. 석종비는 규모가 작은 편으로 비좌-비신-개석을 결구하여 세웠다. 비좌는 상면이 고른 자연석을 활용한 것으로 보이며, 그 위에 올린 비신은 좌우에 별도의 보조 기둥을 세워 고정하였다. 비신 상부에도 개석을 올렸다. 비신은 좌우의 보조 기둥과 개석 하부에 마련된 별도의 좁은 홈에 끼워서 고정하였다. 이처럼 비신 좌우에 보조 기둥을 세우는 것은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와 대장각기비 등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의 일부 석비에서 확인되고 있는 보기 드문 조영 기법이었다. 현재 비신은 파손 상태가 심하고, 비좌와 개석도 다소 어색하여 어울리지 않고 있다.

 

보우는 우왕이 국사에 책봉했던 승려로 1382년 입적하자, 제자들이 다비한 후 수습한 사리를 나누어 여러 사찰에 봉안하였다. 사나사는 보우가 중창하여 살아생전 인연이 깊은 사찰이었기 때문에 석종과 비를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사나사 원증 국사 석종비’는 건립 시기가 명확하고 사리를 나누어 부도와 비를 건립한 초기의 사례이며, 비신 좌우에 보조 기둥을 세운 보기 드문 조영 기법을 보여 중요한 자료이다.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 표지판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 표지석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각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각 전경 (좌측)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전면)

 

사나사를  중창했던 고려 후기의 승려 원증국사 보우(1301~1382)의 비이자. 보우의 호는 태고이며, 시호는 '원증'이고, 탑의 이름은 '보월 승공'이다.

비는 고려말 · 조선초에 유행했던 양식으로, 받침돌 윗면에 비를 꽂아둘 네모난 홈을 파서 비몸을 세우고, 그 양 옆에 기둥을 대어 지붕돌을 얹었다. 비문은 파손되어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고려 우왕 12년(1386) 보우의 제자 달심이 세운 비로, 비문은 정도전이 짓고, 재림사의 주지인 의문이 글씨를 썼다. 비 뒷면에는 비를 세울 때 도움을 준 신도들의 명단을 적었다.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전면)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후면)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후면)

 

2021.08.22. 양평 사나사 대적광전 앞

글 문화재청, 사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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