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경기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5호_이향로선생 생가, 화서기념관, 벽계사당, 노산사지, 이향로 묘소

기리여원 2021. 8. 25. 13:12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_ 이항로선생 생가 (李恒老先生 生家)

 

수량/면적 : 2동 59㎡

지정일 : 1980.06.02

소재지 : 경기 양평군 서종면 화서1로 239(노문리)

 

조선 말기 성리학자였던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1792~1868)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이 집이 위치해 있는 벽계마을은 벽진 이씨의 동성촌으로 이항로선생 생가 외에도 노산사(蘆山祠)가 있어 선생의 높은 학식과 유학을 전승하고 있다. 이항로의 고조 대에 벽계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으며, 이항로의 부친이 생가의 안채를 약 200여 년 전에 건립한 것으로 전한다. 현재 가옥의 배치는 ‘ㄱ’자형의 안채와 ㄷ자형의 사랑채가 가운데 담을 두고 가로로 긴 ‘ㅁ’자형을 취하고 있다. 사랑채는 1994년에 새로 건립한 것이며, 가옥 남쪽의 강당도 최근에 건립한 것이다. 그러나 본래 가옥의 모습은 ‘ㄱ’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행랑채로 구성되었다. 권세 있는 집처럼 안채와 사랑채를 별도로 꾸미지 않고 안채의 한 켠에 사랑방의 기능을 하는 마루방을 설치하여 간소하게 사랑채의 기능을 해결한 것이 특징이다.

 

이 가옥은 안채와 별도의 사랑채를 구성하지 않고 안채의 일부 공간을 사랑채 공간으로 활용하도록 건축되었다. 구조적으로 삼량가의 규모로 건축하였으나, 전면과 후면에 툇칸(退間) 활용하여 공간을 반 칸씩 확보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넉넉지 않는 상황 속에서 필요한 공간을 갖춘 향촌 사대부의 살림집에 대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이항로선생 생가 표지판

 

 

이항로선생 생가

 

 

이항로선생 생가

 

 

이항로선생 생가

 

 

이항로선생 생가

 

현재 가옥의 배치는 ‘ㄱ’자형의 안채와 ㄷ자형의 사랑채가 가운데 담을 두고 가로로 긴 ‘ㅁ’자형을 취하고 있다. 사랑채는 1994년에 새로 건립한 것이며, 가옥 남쪽의 강당도 최근에 건립한 것이다. 그러나 본래 가옥의 모습은 ‘ㄱ’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행랑채로 구성되었다. 권세 있는 집처럼 안채와 사랑채를 별도로 꾸미지 않고 안채의 한 켠에 사랑방의 기능을 하는 마루방을 설치하여 간소하게 사랑채의 기능을 해결한 것이 특징이다.

 

이항로선생 생가 대문

 

 

이항로선생 생가 사랑채

 

 

ㄷ자형의 사랑채

 

 

ㄷ자형의 사랑채

 

 

대문 옆에 붙어 있는 행랑채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담장

 

사랑채와 안채가 담장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행랑채가 대문옆에 바로 붙어 있다

 

 ㄱ자형 안채

 

 

이항로선생 생가 안채

 

안채 중앙에는 청화정사(靑華精舍)란 현판이 걸려 있다.

 

해우소 및 창고

 

 

이항로선생 생가 안채 후면

 

 

▼ 화서기념관입니다.

 

화서기념관(華西紀念館)

 

이항로 선생님과 그 제자들의 간찰, 일기 등 친필과 영정,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으며 선생님의 학문과 사상에 대해 설명하는 패널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향로(李恒老, 1792~1868)

 

자는 이슬, 호는 화서, 조선 후기의 가장 유명한 성리학자로 화서학파를 형성했다. 외세의 침략이 잦던 혼란의 시기에 관직에 오르는 대신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위정척사 사상의 대표자이다.

 

이항로 영정(李恒老 影幀) _ 1978년, 비단에 채색

 

1895년에 화서 이항로를 그린 영정을 베껴 그린 모사본이다. 이항로가 63세 때의 모습으로 평상복인 심의를 입고 머리에는 복건을 썼다.

 

 

▼ 벽계서당입니다.

 

벽계강당(蘗溪講堂)

 

이향로 선생님이 수 많은 후학을 양성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99년에 세운 강당이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후학으로는 양헌수, 최익현, 유인석, 김구 등을 들 수 있다.

 

벽계강당(蘗溪講堂)

 

벽계 강당은 이항로가 그린 강당 설계도면대로 1999년에 세운 것으로 마을 이름을 따서'벽계강당'이라 부른다

 

벽계강당(蘗溪講堂)

 

 

▼노산사지입니다.

 

경기도 기념물 제43호 _ 노산사지 (蘆山祠址)

 

 

조선 후기 유학자인 이항로(李恒老, 1792년-1868년)가 세운 사당[노산사(蘆山祠)]이 있는 터를 말한다.

이항로는 생전에 중국 송나라 시대의 유학자 주희(朱熹)와 조선 후기 유학자 송시열(宋時烈)의 학문을 잇고자, 그가 태어난 집터에 두 사람의 위패와 초상화를 모신 사당[노산사(盧山祠)]을 지었다. 이후 이항로가 죽자 후손들이 그의 학문과 뜻을 길이 전하고자 사당 중앙에는 주희를, 동쪽으로는 송시열을, 서쪽에는 이항로를 각각 모셨다.

현재의 노산사는 한국 전쟁으로 불타 없어졌다. 이후 1954년에 지역 유림(儒林)들에 의해 다시 세워졌고, 1985년에 중수(重修; 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것을 손질하여 고침)하였다. 현재 이항로의 생가 뒤에 묘소가 있으며, 묘소 앞에 사당인 노산사가 위치하고 있다.

노산사지의 경내면적은 264㎡이고 사당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1칸 반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그리고 사당 앞에는 묘정비(廟庭碑; 일반적으로 사당의 건립취지와 인물 등에 관한 기록들이 적힌 비석)와 기념비 및 제월대(霽月臺; ‘비가 갠 뒤의 밝은 달’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본성을 찾으라는 의미)가 세워져 있다.

 

노산사(蘆山祠)

이항로는 생전에 중국 송나라 시대의 유학자 주희(朱熹)와 조선 후기 유학자 송시열(宋時烈)의 학문을 잇고자, 그가 태어난 집터에 두 사람의 위패와 초상화를 모신 사당[노산사(盧山祠)]을 지었다. 이후 이항로가 죽자 후손들이 그의 학문과 뜻을 길이 전하고자 사당 중앙에는 주희를, 동쪽으로는 송시열을, 서쪽에는 이항로를 각각 모셨다

 

 

 

▼이항로선생의 묘입니다.

 

노산사지 뒤에 위치한 이항로(李恒老, 1792년-1868년)선생의 묘

 

 

이항로(李恒老, 1792년-1868년)선생의 묘

 

 

이항로(李恒老, 1792년-1868년)선생의 묘

 

2021.08.22. 이항로선생 생가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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