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찰

삼척 천은사,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

기리여원 2021. 9. 4. 16:32

삼척 천은사에 있는 지정문화재

 

1. 사적 제421호 _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

2.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7호 _ 삼척 천은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3.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8호 _ 삼척 천은사 금동약사여래입상(월정사 성보박물관 보관)

 

천은사(天恩寺) 극락보전(極樂寶殿)

 

삼척 천은사(參陟 天恩寺)

 

천은사(天恩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이며 강원도에서 지정한 제34호 전통사찰이다. 신라 경덕왕 17년 758년에 두타삼선(頭陀三仙)이 백련(白蓮)을 가지고 와서 절을 창건 한 뒤 백련대(白蓮臺)라 하였다. 흥덕왕 4년 829년에 범일국사가 극락보전을 건립함으로써 사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고려 충렬왕 때는 동안(動安) 이승휴거사가 이곳 용계(龍溪)에 용안당(容安堂)이라는 별장을 짓고 10여 년 동안 대장경을 공부한 후 『제왕운기 』를 저술했다. 71세 되던 충렬왕 30년 1304년에는 별장을 간장암(看藏庵)이라 이름을 바꾸고 전답을 시주하여 절의 재산으로 남게 했다.

조선 선조 31년 1598년에 청허당 서산(西山)대사가 절을 중건하고 응진전, 백화당, 청연당, 동별실, 설선당, 수검당, 범종각 등 가람을 크게 중창했다. 이 때 절의 서남쪽에 있는 봉우리가 검푸른 것을 보고 흑악사(黑岳寺)라 개명하였다. 1899년 조선 태조 이성계의 4대조 목조(穆祖)의 능과 5대조·비의 묘인 준경묘와 영경묘를 미로면 활기리에 수축할 떄 이곳을 조포사능에 속해 나라 제사에 쓰는 두부를 맡아 만들던 절로 지정하고 원당사찰로 삼았다. 이후 '임금의 은혜를 입었다'하여 천은사(天恩寺)라 다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두타산천은사(頭陀山 天恩寺) 일주문(一柱門)

 

이 곳에서 천은사 경내까지는 600m입니다.

주변 경관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갑니다.

 

두타산천은사(頭陀山天恩寺) 일주문(一柱門) 편액

 

이 편액은 1995년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1921~2006)의 예서체 글씨임

그 외에도 천은사(天恩寺) 현판도  1995년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의 예서체 글씨임

 

동안 이승휴상징조형물

 

 

주차장에서 천은사로 가는 집입로 주변에 수목이 울창합니다.

 

 

천은사 진입로 주변에 수령이 250년 된 느티나무가 여러그루 있습니다.

아주 고요하고 물소리만 귓가에 들려옵니다.

 

울창한 느티나무 주변으로 경관이 참 아름답습니다,

 

여기서 좌측은 두타산 가는 산행로입니다.

 

두타산 등산로 안내도

 

천은사에서 쉰움산을 거쳐 두타산으로 갈수 있는 산행로가 있습니다. 

전에 동해 삼화사에서 출발하여 두타산성을 지나 두타산으로 산행을 했는데  이 길이 훨씬 빠릅니다.

 

천은사 입구의  해탈교

 

 

 영월루(映月樓)아래에 위치한 범종각(梵鐘却)

 

 

천은사(天恩寺)  범종(梵鐘)

 

 

천은사(天恩寺)  영월루(映月樓)

 

 

천은사(天恩寺)  영월루(映月樓)

 

 

천은사(天恩寺) 육화료(六和寮)

 

스님들이나 방문하는 손님들이 기거하는 건물이다.

 

천은사 종무소, 요사체 및 공양간

 

 

천은사(天恩寺) 현판

 

이 현판은  1995년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1921~2006)의 예서체 글씨임

 

종무소 및 요사체

 

 

천은사 오층석탑

 

 

천은사 오층석탑

 

 

천은사(天恩寺) 극락보전(極樂寶殿)

 

천은사 건물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기둥과 기둥사이에 공포가 있는 다포식양식의 목조건축물이다. 다포식양식은 주로 조선시대 후기에 건축한 양식입니다. 

 

삼척 천은사(參陟 天恩寺) 표지판

 

 

천은사(天恩寺) 극락보전(極樂寶殿) 좌측면

 

 

천은사(天恩寺) 극락보전(極樂寶殿) 우측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7호 _ 삼척 천은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三陟 天恩寺 木造阿彌陀三尊佛坐像)

 

천은사 극락보전에 모셔진 아미타 삼존불 좌상은 사람 크기의 불상 3구로 이루어져 있다. 앉아있는 모양으로 나무를 조각하여 짜 맞춘 아미타불(阿彌陀佛)과 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이다. 전체적으로 표정, 복식, 수인(手印)이 비슷하게 만들어졌는데, 단정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긴다. 조각 기법과 표현 양식, 특히 불상 안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조선 시대(15세기 중반~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운데에 있는 아미타불은 본존불(本尊佛)로서 높이가 101cm로 가장 크다. 그 왼쪽에 있는 관음보살상은 좌협시불(左脇侍佛)로서 높이가 96.5cm이며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다. 아미타불의 오른쪽에 있는 지장보살상은 우협시불(右脇侍佛)로서 높이가 87cm이며 머리를 깎은 민머리이다. 이 세 불상은 동일하게 오른손을 가슴 앞에 세우고 왼손을 다리 위에 뉜 손 모양을 하고 있는데, 아미타불이 취하는 수인 중 하나인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이다.

 

천은사(天恩寺) 약사전(藥師殿)

 

 

천은사 약사전에 봉안한 금동약사여래입상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8호 _ 삼척 천은사 금동약사여래입상, 복제품

 

진품은 월정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중

 

천은사(天恩寺) 삼성각(三聖閣)

 

 

천은사(天恩寺) 삼성각(三聖閣)

 

 

산신각, 독성각, 용왕각

 

 

삼성각에서 바라본 천은사 경내

 

 

굴피지붕의 통방아

 

 

천은사 영지

 

 

▼천은사 바로 아래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한 곳인 이승휴 유적으로 갑니다.

 

천은사 아래 이승휴 유적으로 가는 진입로

 

 

사적 제421호 _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 (三陟 頭陀山 李承休 遺蹟)

 

이곳은 고려 시대의 뛰어난 문인이자 정치가인 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1224~1300)가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집을 짓고 살던 터이다. 고려 충렬왕 13년(1287년) 무렵 이승휴는 이곳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서에서 가장 귀중한 자료 중 하나인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하였다.

 

이승휴는 어렵게 벼슬을 얻었으나 강직한 성품 탓에 여러 번 좌천되었다. 이에 어머니의 고향인 두타산 구동(龜洞)으로 돌아와 「제왕운기」, 「내전록」, 「동안거사집」 등의 책을 저술하였다. 특히 「제왕운기」는 우리나라 역사와 중국 역사를 칠언시(七言詩)와 오언시(五言詩)로 엮은 서사시로, 우리 역사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밝히고 계승 관계를 체계화한 귀중한 자료이다.

 

「동안거사집」의 '보광정기'를 보면 이승휴는 언덕 위에 용안당(容安堂)을 짓고 여기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용안당 남쪽에 우물을 만들어 표음정(瓢飮渟)이라고 불렀으며, 이 위에 정자를 짓고 보광정(葆光亭)이라고 불렀다. 보광정 아래에는 연못을 만들어 지락당(知樂塘)이라고 불렀다. 이 내용은 1998년에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 절터와 연못의 흔적, 청자 가마터 등이 나오며 사실로 확인되었다.

 

 

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1224~1300)의 위패를 모신 동안사(動安祠)

 

 

이승휴 유적 주변에 노랗게 핀 상사화

 

2021.08.13, 삼척 천은사 

글 문화재청, 삼척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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