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경기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46호_심련원신도비, 심련원의 묘

기리여원 2022. 2. 1. 21:54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46호 _ 심련원 신도비 (沈連源 神道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92.12.31

소재지 : 경기 김포시 통진읍 옹정리 산14-2번지

 

조선 명종 때의 문신인 심연원(沈連源, 1491~1558)을 기리기 위해 1560년(명종 15)에 건립한 비이다. 본관은 청송이고 호는 보암(保庵)이다. 1551년 영의정에 올랐으며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에 진봉되었다. 명종의 묘정(廟廷)에 배향되었다.

 

신도비는 묘역의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귀부이수(龜趺螭首) 양식을 갖추고 있다. 귀부(龜趺 ; 거북 모양의 받침돌)의 귀갑(龜甲 ; 거북 껍데기)과 그 위에 얹은 연잎 모양의 복련(覆蓮)은 볼륨 있게 조각한 반면, 귀두(龜頭 ; 거북 머리)는 간략히 표현하였다. 이수(螭首 ; 용을 새겨 장식한, 비석 머릿돌)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차지하려고 서로 다투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묘사하였다. 비문은 정사룡(鄭士龍)이 짓고, 당대의 명필로 송설체에 능하였던 송인(宋寅)이 썼으며, 전액(篆額 ; 전서체로 비석의 이름을 새긴 부분)은 심연원의 조카인 심전(沈銓)이 썼다.

 

심련원 신도비 표지판

 

 

심련원 신도비 표지석

 

 

심련원 신도비각

 

 

심련원 신도비각

 

 

심련원 신도비각

 

 

심련원 신도비

 

충혜(忠惠) 심련원(沈連源, 1491~1558)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맹용(孟容), 호는 보암(保庵). 영의정 심회(沈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심원(沈湲)이고, 아버지는 사인 심순문(沈順門)이다. 어머니는 감찰 신영석(申永錫)의 딸이다. 김안국(金安國)의 문인이다

 

1516(중종 11) 생원이 되고, 1522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권지정자(承文院權知正字)를 거쳐 예문관에 들어가 검열·대교(待敎봉교(奉敎)를 역임하였다. 감찰(監察)과 공조·예조·이조의 좌랑을 거쳐, 1526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병과로 다시 급제하였다. 1531년 검상·사복시부정(司僕寺副正)을 거쳐 1533년 진휼경차관(賑恤敬差官)에 뽑혀 굶주린 백성을 구제했으며, 1533년 의주부사에 올랐다.

 

1538년에는 동부승지가 되고 이듬해에는 예조참판으로 진향사(進香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병조참의·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541년에 대사성, 이듬해 특진관(特進官형조참판, 1543년 한성부판윤, 다음 해 호조참판이 되었다. 1545(명종 즉위년) 호조판서로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임하였다.

 

이 해 을사사화가 일어나 위사공신(衛社功臣) 2등에 녹훈되고, 청천군(靑川君)에 봉해진 뒤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인종실록편찬에 참여하였다. 1547년 좌참찬·예조판서·우찬성·판의금부사·좌찬성 등을 거쳐, 우의정에 오른 뒤 좌의정을 거쳐 1551년 다시 영의정이 되었으며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에 진봉되었다.

 

문장에 능하고 일처리에 세밀하였다. 특히 중국과 우리나라의 지리에 밝아서 혹 남의 질문을 받으면 직접 자신이 목격한 것처럼 막힘없이 응대하였다. 일찍이 탐라목사로 있을 때 그곳 산천을 살펴 지도를 그려두었다. 1555년 남해변에 많은 왜구가 침입했을 때, 가장 요충 지역이던 탐라가 당시 심연원이 그려둔 지도에 의거하여 대응책을 세워 이를 막아냈고, 이에 사람들이 심연원의 선견지명에 감복했다한다. 명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혜(忠惠)이다.

 

심련원 신도비 이수

 

 

심련원 신도비 비신

 

 

심련원 신도비 귀부

 

 

심련원 신도비

 

 

심련원 신도비

 

 

심강선생의 부친인 심련원(沈連源)의 묘

 

 

심련원(沈連源)의 묘비

 

2021.01.31 ,김포시 통진읍 옹정리, 심련원 신도비

글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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