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 283

충청남도 기념물 제63호_서산 둔당리 지석묘

충청남도 기념물 제63호 _ 서산 둔당리 지석묘 (瑞山 屯堂里 支石墓) 수 량 : 1기 지정일 : 1986.11.19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둔당리 산 25-5 지석묘는 청동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서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뚜껑돌을 덮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서산 둔당리의 얕은 야산에 있는데, 원래는 2기의 고인돌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1기가 파괴되어 없어졌고, 지금 남아 있는 고인돌도 일제 때 도굴되었다고 한다. 형태상 ..

충청남도 기념물 제3호_홍산 만덕교비

충청남도 기념물 제3호 _ 홍산 만덕교비 (鴻山 萬德橋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73.12.26 소재지 : 충남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11-2번지 시 대 : 조선시대(숙종7년 1681) 홍산 시가지 북쪽에 흐르던 홍산천에 ‘만덕교’라는 돌다리를 놓은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홍산 읍내로 들어가는 큰 관문이 되었던 만덕교의 건립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고, 비는 원래 다리 옆에 있었으나 다리가 없어진 뒤, 홍산초등학교로 옮겼다가 다시 지금의 자리인 홍산객사내로 옮겨온 것이다. 비는 비몸돌과 머릿돌을 하나의 돌로 만들어 세웠으며, 머릿돌에는 구름무늬를 새겼다. 조선 숙종 7년(1681)에 세운 것으로, 비문에는 객사 동쪽에 시내가 있으나 다리가 없어, 첨지 서덕해가 오랜 기간에 걸쳐 무지개모양의..

단풍에 물든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2022.11.06)

충청남도 기념물 제194호 _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 (扶餘 鴻山客舍 銀杏나무) 수 량 : 1주 지정일 : 2019.12.02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211-1 시 대 : 조선시대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7호 「홍산객사」 우측에 있는 은행나무로 대부분은 암나무의 수령이 오래된 것이 많은데 홍산객사은행나무는 약 750년 된 수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다. 더불어 홍산객사의 건립시기를 고려시대로 추정해 볼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홍산객사 및 주변 마을의 역사와 문화적 사실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나무로 역사적, 문화적, 경관적 가치가 높다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 표지판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 홍산객사 은행나무는 약 750년 된 수나무로 뿌리 둘레 약 11m 높이 ..

노랗게 물든 논산 성동 은행나무(2022.11.06)

충청남도 기념물 제152호 _ 성동 은행나무 (城東 銀杏나무) 수 량 : 1주 지정일 : 2000.01.11 소재지 : 충남 논산시 성동면 금백로 475 (개척리)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성동 은행나무는 나이가 450∼493년 정도된 것으로 추정되며, 강경에서 성동면 개척리로 들어오는 도로변 왼쪽에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문장과 시문이 뛰어나면서 도술 또한 능통한 전우치가 기묘사화(1..

충청남도 기념물 제156호_태안 흥주사 은행나무(2022.11.05)

충청남도 기념물 제156호 _ 태안 흥주사 은행나무 (泰安興住寺銀杏나무) 수 량 : 1주 지정일 : 2001.06.30 소재지 : 충남 태안군 태안읍 속말1길 61-61 (상옥리) 시 대 : 고려시대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태안 흥주사 은행나무는 태안읍 백화산(白華山)에 있는 흥주사의 약 40m 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흥주사 경내에는 만세루와 삼층석탑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아득히 먼 옛날 먼길을 가던 노승이 백화산 산기슭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50호_안동 송천동의 모감주나무(2022.10.31)

경상북도 기념물 제50호 _ 안동 송천동의 모감주나무 (安東 松川洞의 모감주나무) 면 적 : 1,356㎡ 지정일 : 1984.12.19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송천동 산30-2번지 모감주나무는 중국·대만·일본 등지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와 강원도 이남에서 자라고 있다. 여름에 노란 꽃이 피고 열매는 콩알보다 약간 큰데, 열매가 둥글고 검으며 윤기가 있어 염주를 만드는데 쓰인다. 스님들은 이 열매로 염주를 만들기 때문에 염주나무 또는 보리수라 부른다. 송천동의 모감주나무는 나이가 3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약 15m, 가슴높이의 지름은 37㎝이다. 동래 정씨 석문공파(石門公派) 소유이며, 석문 정영방(1577∼1650) 선생이 살아 있을 때 좋아하던 나무로, 선생이 죽은 후 그의 아들이 ..

경상북도 기념물 제44호_안동 송리동 은행나무(2022.10.31)

경상북도 기념물 제44호 _ 안동 송리동 은행나무 (安東 松里洞 銀杏나무) 수량/면적 : 1주124㎡ 지정일 : 1983.09.28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일직면 송리 650-2번지 2필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안동 송리동의 은행나무는 고려말 정평공 손홍량이 20여 세 때 심은 나무라고 전해오며 나이는 68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20m, 둘레 4m로 마을 가운데에 있으며 죽은 가지가 많은데, 한 때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충청북도 기념물 제137호_충주 견학리 토성

충청북도 기념물 제137호 _ 충주 견학리 토성 (忠州 見鶴里 土城) 수량/면적 : 1기 지정일 : 2006.01.06 소재지 : 충주시 신니면 견학리 441 시 대 : 철기시대-통일신라 구릉 선단부에 축조한 규모가 작은 토성으로 서쪽성벽은 유실되었으나 나머지 부분은 온전하다. 전체 둘레는 200미터가 약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성벽의 높이는 대략 5미터 정도로 보인다. 발굴조사시 출토된 유물로는 목부분에 물결무늬가 시문된 것과 편병,어골문 기와 등이며 출토유물 대부분은 9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것으로 통일신라 하대 호족과 관련있는 유적으로 보이며 2차레에 걸치 판축 혹은 수축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충주 견학리 토성 표지판 충주 견학리 토성 충주 견학리 토성 충주 견학리 토성 충주 견학리 토성 충주 ..

충청북도 기념물 제133호_충주 신청리 고인돌

충청북도 기념물 제133호 _ 충주 신청리 고인돌 (忠州 新淸里 支石墓) 수 량 : 1기 지정일 : 2004.11.26 소재지 : 충주시 신니면 신청리 502 이 지석묘는 개석식 지석묘로 본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덮개돌 윗면에 크고 작은 굼이 141개 분포하고 있어 선사시대 거석문화 연구, 특히 매장행위와 관련된 중요한 자료이다 충주 신청리 고인돌 표지판 신청리 고인돌(지석묘) 국도 바로 옆에 위치해 있습니다. 충주 신청리 고인돌 충주 신청리 고인돌 충주 신청리 고인돌 충북도내에서 발견된 고인돌로서는 큰 규모로 덮개돌(482×370×125cm)의 윗면에는 지름 10~4cm, 깊이 3~1cm 가량되는 크기의 구명(聖穴 : cup mark)이 약 80여개 나 있다. 충주 신청리 고인돌 이 구멍들을 ..

충청북도 기념물 제27호_충주 박팽년 사당

충청북도 기념물 제27호 _ 충주 박팽년 사당 (忠州 朴彭年 祠堂) 수 량 : 1동 지정일 : 1978.10.27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참샘길 113 (신니면, 박팽년사우) 조선 전기 충신으로 단종 복위를 위해 애쓴 사육신(死六臣) 중 박팽년(1417∼1456)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박팽년은 세종 29년(1447)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전의 관원이 되어 신숙주, 유성원 등 젊은 학자들과 편찬사업에 참여하였다.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려 하였으나, 성삼문의 만류로 단념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단종 복위 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김질의 밀고로 실행하기도 전에 발각되자 그의 재주를 아깝게 여긴 세조의 회유에도 뜻을 굽히지 않다가 성삼문·하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