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 283

두 그루의 소나무가 한 그루로 보이는 '예천 수한리 소나무'

경상북도 기념물 제180호 _ 예천 수한리 소나무 (醴泉 水閑里 소나무) 수 량 : 2주 지정일 : 2020.10.22 소재지 :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수한리 산 30 시 대 : 여말선초 수한리 소나무는 감천면 수한리 한티마을 북쪽 한티고개에 위치하고 있어 한티소나무라고도 불린다. 수령이 600여년으로 추정되는 수한리 소나무는 두 그루의 수관*이 합쳐져 멀리서 보면 한 그루의 쌍간**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등 수형이 특이하고 수관이 좋아 생태학적 가치가 있다. 마을에서는 고려 충신 박공朴公이 600여년 전 한티마을에 터를 잡고 충절을 다짐하며 고갯마루에 소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그 가운데 한그루는 50여년 전 고사***되고 두 그루가 남았다. 마을사람들은 지금까지도 마을을 지켜주는..

경기도 기념물 제87호_강희맹선생묘 및 신도비

경기도 기념물 제97호 _ 강희맹선생묘및신도비 (姜希孟先生墓및神道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85.09.20 소재지 : 경기 시흥시 하상동 2번지 조선 초기 성종대의 뛰어난 학자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농학자 강희맹(姜希孟, 1424∼1483) 선생의 묘이다. 세종 29년(1447) 24세로 장원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세조 9년(1463) 중추원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세조의 총애를 받아 세자빈객이 되었다. 예종 즉위년(1468)에 진산군(晉山君)에 봉해졌으며, 성종 13년(1482)에 좌찬성에 이르렀다. 문장이 당대 으뜸이고 글과 그림에도 뛰어났으며, 인품이 겸손하고 치밀해 맡은 일을 잘 처리하였다.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세조실록』,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경국대전』,..

기념물/경기도 2023.01.22

경기도 기념물 제56호_ 이대원장군묘 및 신도비

경기도 기념물 제56호 _ 이대원장군묘및신도비 (李大源將君墓및神道碑) 수 량 : 일원5,643㎡ 지정일 : 1980.06.02 소재지 : 경기 평택시 포승읍 희곡리 산83-6번지 조선 중기의 무신 이대원(李大源, 1556∼1587) 장군의 묘이다. 1587년(선조 20)에 남해안에 출몰한 왜구를 토벌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왜구가 다시 흥양에 침입하자 출병하여 손죽도 해상에서 적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묘역은 그의 부인인 경주 김씨(慶州金氏)·용인 이씨(龍仁李氏)와 함께 매장된 삼분(三墳 ; 봉분이 3개인 무덤)의 형태이다. 그 중 장군의 봉분은 중앙에 있는데,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여 옷으로 대신하였다고 전한다. 묘표(墓表; 무덤 주인공의 이름 등을 새긴 비석)는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 둥근 머릿..

기념물/경기도 2023.01.22

경기도 기념물 제103호_조남리 지석묘

경기도 기념물 제103호 _ 조남리 지석묘 (鳥南里 支石墓) 수 량 : 1기 지정일 : 1988.03.21 소재지 : 경기 시흥시 조남동 408-4번지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거대한 덮개돌[上石]이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支石], 묘역시설(墓域施設), 무덤방 등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역과 시기에 따라 그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일반적으로는 무덤방이 지상에 위치한 탁자식(卓子式)과 지하에 위치한 기반식(碁盤式) 또는 바둑판식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지하에 무덤방이 위치하지만, 거대한 덮개돌 아래에 고임돌을 두지 않는 형식을 별도로 개석식(蓋石式), 또는 무지석식(無支石式)이라 칭한다. ‘..

기념물/경기도 2023.01.21

충청북도 기념물 제149호_이시진 묘소, 이시진 효자각

충청북도 기념물 제149호 _ 충주 이시진 묘소 (忠州 李時振 墓所) 수량/면적 : 1원(묘역 3,200㎡) 지정일 : 2010.12.10 소 재 지 :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산17-1 이시진(1578∼1633)은 조선시대 「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 기록된 효자로서 국가로부터 정려를 받은 인물이다. 이시진 묘소(李時振 墓所)는 17세기 전반부터 20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전주이씨 임영대군 효자공파 6세손인 이시진 묘부터 13세손인 이명규 묘까지 조성되어 있다. 墓域은 구릉의 능선을 따라 李時振 墓, 李晩栽(이시진의 장자) 墓, 李世彦(이만재의 장자) 墓, 李億齡(이세언의 장자) 墓, 李顯昌(이억령의 장자) 墓, 5대에 걸친 직계 장손들의 묘소가 차례로 조성되어 있다. 李鶴齡(이세언의 차자) 墓, 李濟弘 墓,..

충청북도 기념물 제153호_충주 양능길 · 양여공 묘소

충청북도 기념물 제153호 _ 충주 양능길·양여공 묘소 (忠州 梁能吉·梁汝恭 墓所), 양능길 묘소 수량/면적 : 1곽 지정일 : 2012.01.06 소재지 :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산58 시 대 :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양능길은 고려 개국공신으로 충주양씨 문중에서 시조로 삼고 있고, 묘소는 형태가 팔각형의 죽절형(竹節形) 모서리 기둥을 새긴 호석(護石)을 두른 특이한 양식이다. 일부 풍화되고 결실된 부분을 보수한 흔적이 있으나, 고려시대 분묘 유적으로 그 유례가 희귀하다. 양능길의 15대손 양여공(梁汝恭)은 조선시대 초기의 인물로 급제 후 예조정랑까지 오른 효자로 이름난 인물이다. 양능길과 양여공은 충주지역의 인물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묘소가 원위치에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어 하나로 묶어 보호할 필요..

충청남도 기념물 제90호_도응선생묘일원

충청남도 기념물 제90호 _ 도응선생묘일원 (都膺先生墓一圓) 수량/면적 : 15,188㎡(2필) 지정일 : 1993.11.12 소재지 : 충남 예산군 응봉면 계정길 9-20, 외 2필 (지석리) 소유자 : 성주도씨청송당종중 고려 후기의 충신 청송당 도응 선생과 그의 손자인 순손(順孫)의 묘이다. 고려 우왕 때의 문인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문하찬성사에 올랐다. 태조가 조선을 세우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켜 벼슬을 버리고 홍주(지금의 홍성)에 숨어살았다. 후에 태조가 옛 친구의 정을 생각하여 다섯 번이나 벼슬을 내리고 불렀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태조가 그의 충성과 절의를 아름답게 여겨 청송당이라는 호를 내렸다. 묘의 형태는 각각 원형으로 그 사이에 비석이 서 있다. 비석을 세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

충청북도 기념물 제141호_충주 우천석 · 우팽 묘소

충청북도 기념물 제140호 _ 충주 우천석·우팽 묘소 (忠州 禹天錫·禹伻 墓所) 수 량 : 2기 지정일 : 2007.03.09 소재지 : 산척면 송강리 산105-1 조선시대 조성된 묘소로 정확한 조성연대는 미상이나 우천석이 1280년(충렬왕 6) 문하시중에 올랐으며, 충주에 장지(장지)를 정한 이래 후손들의 세거지(세거지)가 되었다. 묘표는 1919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우팽은 우천석의 차자로 우천석 묘소 뒤편에 있는데 조성시기는 조선시대이며 묘표와 문관석은 조성 당시의 것이고 묘비는 1980년에 세웠다. 우천석 묘소는 약160㎡정도의 방형분으로 4~5단 쌓아 호석을 두르고 있으며호석의 높이는 90㎝이다. 방형의 전면은 263㎝, 측면은 550㎝이고 상석과 문인석이 있으며 좌측으로는 구묘표가 있으..

충청북도 기념물 제136호_충주 부흥사 방단적석유구

충청북도 기념물 제136호 _ 충주 부흥사 방단적석유구 (忠州 富興寺 方壇積石遺構) 수 량 : 1기 지정일 : 2005.10.21 소재지 :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산4-1 시 대 : 고려말 조선초로 추정 원래 방단식 이형 탑으로 추정되며 축조에 사용된 돌은 적돌크기보다 작은 장방형의 돌을 한 켜씩 쌓아올렸다. 탑의 앞면 하단부에는 감실이 조성되어 있고 감실 안에는 '富興山神位'라 새겨진 석비가 자리하고 있다. 충주 부흥사 방단적석유구 표지판 고 최봉출 탑(故 崔奉出 塔)이라고 쓰인 석비(石碑) 고 최봉출님께서 48년간을 쌓은 석비 충주 부흥사 방단적석유구 전경 부흥사 뒤쪽에 네모난 형태의 기단에 돌을 쌓은 구조물인 충주 부흥사 방단적석유구 '부흥산 신위(富興山 神位)'라 새겨진 석비가 안치되어 있는 감실..

충무공 이수일 묘소

충청북도 기념물 제21호 _ 충주 이수일 묘소 (忠州 李守一 墓所) 수량/면적 : 1원 지정일 : 1978.02.22 소 재 지 : 충북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 202-1번지 조선 중기의 무신인 은암(隱庵) 이수일(1554∼1632) 장군의 묘소이다. 선조 16년(1583) 무과에 급제한 후 훈련원의 벼슬을 거쳐 선전관이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장기현감으로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다. 그후 밀양목사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를 맡았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성주목사로서 왜적을 격퇴하였다. 인조 2년(1624)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평안도 병마절도사 겸 부원수가 되어 반란군을 대파하였다.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에 위치한 그의 묘는 부인 전주 이씨와 합장한 것으로 화강암으로 봉분의 아래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