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323

국보 제151-4호_조선왕조실록(성종 ·인조 ·효종실록)

국보 제151-4호 _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 (朝鮮王朝實錄 赤裳山史庫本), 성종대왕실록 수 량 : 책(광해군일기 : 1책, 성종․인조․효종실록 : 3책) 지정일 : 2019.06.26 소재지 : 국립중앙박물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시 대 :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 태조(太祖)에서부터 조선 철종(哲宗)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編年)으로 정리한 책이다. ‘성종대왕실록(成宗大王實錄)’처럼 왕의 묘호(廟號)를 붙인 서명으로 간행되었으므로, 일반적으로 ‘조선왕조실록’ 이라고 통칭한다. 완질은 1,717권에 이르는 방대한 기록이다. 완성된 실록은 재난에 대비하고자 춘추관사고(春秋館史庫; 서울), 정족산사고(鼎足山史庫; 강화),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 ..

문화재/국보 2019.07.11

국보 제332호_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국보 제332호 _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旌善 淨岩寺 水瑪瑙塔) 수 량 : 1기 지정일 : 2020.06.25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함백산로 1410 (고한읍, 정암사) 시 대 : 고려시대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이 있는 정암사는 「삼국유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라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받아 귀국한 후, 643년(선덕여왕 12년)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임. 정암사에는 수마노탑을 바라보는 자리에 적멸보궁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통도사, 오대산 중대, 법흥사, 봉정암의 적멸보궁과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으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음. 수마노탑이라는 명칭은 불교에서 금·은과 함께 7보석 중의 하나인 마노(瑪瑙)와 ..

문화재/국보 2019.06.01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 정비 준공! 국보 제11호_익산 미륵사지 석탑(2019.05.19)

국보 제11호 _ 익산 미륵사지 석탑 (益山 彌勒寺址 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62.12.20 시 대 : 백제시대 소재지 :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97번지 백제 최대의 사찰이었던 익산 미륵사는 무왕(武王, 600-641) 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륵사는 전형적인 1탑1금당의 백제식 가람배치와 달리 세 개의 탑과 금당 등으로 구성된 3탑3금당의 독특한 배치형식이다. 이 미륵사지 석탑은 세 개의 탑 중 서쪽에 위치한 탑이다.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창건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진 석탑 중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이다. 원래는 9층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반파된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있었다. 창건당시의 정확한 원형은 알 수 없으며, 17~18세기 이전 1층 둘레에 석축..

문화재/국보 2019.05.20

국보 제316호_완주 화암사 극락전(2016.03.13)

국보 제313호 _ 완주 화암사 극락전 (完州 花巖寺 極樂殿) 수 량 : 1동 지정일 : 2011.11.28 시 대 : 조선시대 소재지 : 전라북도 완주군 화암사길 271 (경천면, 화암사) 화암사는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있는 절로 본사인 금산사에 딸린 절이다. 절을 지을 당시의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원효와 의상이 유학하고 돌아와 수도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문무왕 이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극락전은 1981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조선 선조 38년(1605)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며 소박하고 작은 규모를 보이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문화재/국보 2019.04.13

국보 제33호_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국보 제33호 _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昌寧 新羅 眞興王 拓境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62.12.20 소재지 :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1번지 시 대 : 신라시대 빛벌가야(지금의 창녕군)를 신라 영토로 편입한 진흥왕이 이곳을 순시하면서 민심을 살핀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당시 창녕군은 신라가 서쪽으로 진출하는데 있어 마치 부채살의 꼭지와 같은 중요한 길목이었는데, 진흥왕 16년(555) 신라에 병합되었고, 565년에는 대야주(지금의 합천군)와 합쳐져 비사벌군(比斯伐郡) 또는 비자화군(比自化郡)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비는 목마산성 기슭에 있던 것을 192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비각안에 모셔 둔 것으로, 자연석의 앞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비문을 새기고, 그 둘레에 선으로 윤..

문화재/국보 2019.04.07

국보 제8호_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국보 제8호 _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保寧 聖住寺址 郎慧和尙塔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62.12.20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80-4 시 대 : 통일신라시대 성주사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낭혜화상 무염(無染)의 탑비이다. 낭혜화상은 무열왕의 8세손으로 애장왕 2년(801)에 태어나 열세 살 되던 해에 출가, 헌덕왕 13년(821)에 당나라로 유학하여 수도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문성왕 7년(845)에 귀국하여 당시 웅천(지금의 보령)에 있던 오합사(烏合寺)의 주지가 되었다. 이 절에서 선(禪)을 널리 알리고 점점 크게 번성하게 되자, 왕은 ‘성주사’라는 절 이름을 내려주었으며, 진성여왕 2년(888) 89세로 이 절에서 입적하니 왕은 시호를 ‘낭혜’라 ..

문화재/국보 2019.04.07

국보 제4호_여주 고달사지 승탑(2014.08.24)

국보 제4호 _ 여주 고달사지 승탑 (驪州 高達寺址 僧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62.12.20 시 대 : 고려시대 소재지 :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11-1 고달사터에 남아 있는 높이 4.3m의 고려시대의 승탑이다. 고달사는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된 절로, 고려 광종 이후에는 왕들의 보호를 받아 큰 사찰로서의 면모를 유지하기도 하였으나, 조선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바닥의 형태가 8각을 이루고 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완전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잘 남아있다.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基壇)은 상·중·하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대의 각 면에는 내부에 꽃 형태의 무늬가 있는 안상(眼象)이 2구씩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16엽의..

문화재/국보 2019.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