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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5호_황윤석 생가

기리여원 2024. 6. 22. 14:02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5호 _ 황윤석 생가 (黃胤錫 生家)


수량/면적 : 일곽
지정일 : 1986.09.08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조동길 33 (성내면, 황윤석선생고택)
시   대 : 조선시대 후기

 

이 건물은 조선후기의 실학의 대가인 이재 황윤석(1729~1791)선생의 생가이다. 이재 선생의 선친인 황전공이 건립하였으며 지금은 안채, 사랑채, 문간채가 남아 있다.

안채는 정면 6칸에 앞뒤에 퇴간을 둔 5량 가구의 일자형 벽체는 안방에서 아래, 중방사이를 모두 관벽으로 하고 중방에서 하방사이는 솟을 동자를 세운 머름청판으로 꾸며 격식을 갖춘 것이 특색이다.

당초에는 사랑이 안채 뒷편에 있었으나 터만 남아 있고 사랑채, 문간채는 소실 되었던것을 1909년에 다시 지었다.

선생은 대대로 학문과 행의가 뛰어난 집안에서 태어난 가풍을 이어 받아 당대의 선학인 백시며, 백시덕, 박필주, 김원행등에게 배웠고 정후, 윤봉구, 양응수, 김시찬, 김수, 안형옥, 서명응, 정경순, 조정, 윤창정, 이간, 김용경, 김성범, 김이신, 심유진, 김광한등과 교유하면서 역·수·성·리를 비롯하여 성음, 방언, 가요, 여지, 복식, 형척, 보계, 제도, 병진, 필화, 의약, 풍수, 농형, 선불, 초목, 금석 등에 이르기 까지 통달하였다.

저서에는 이재유고 14권과 이수시편 23권, 자지록, 수필일기 등이 있고, 관직으로는 참봉, 직장, 별제, 익위사 익찬, 동부도사, 목천현감, 전희련감등을 지냈다.

황윤석 생가 표지판

 

황윤석 생가 대문채

 

대문채 처마에 걸려있는 황윤석 생가 현판

 

황윤석 생가 사랑채 및 문간채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생가이다.

이재(頤齋)의 선친이 건립하였으며, 지금은 안채 · 사랑채 · 곳간채 · 문간채만 남아 있다.

대 박물학자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 선생 표지판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  은 1759년(영조 35)에 과거에 합격하고 추천으로 관직에 진출하였으며, 『이재난고(頤齋亂藁)』 등 30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겼다. 황윤석은 당시 학자가 탐구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걸쳐 연구한 학자였고, 유학자이기도 했다. 또한 상수학자, 역사학자, 어학자이며, 사회 경제학자이고, 과학자이기도 하였다.

 

- 네이바지식백과 -

황윤석 생가 사랑채

 

황윤석 생가 사랑채 좌 · 우측면

 

황윤석 생가 사랑채 후면

 

안채로 출입하는 대문

 

황윤석 생가 문간채

 

황윤석 생가 곳간채

 

곳간채는 5칸 규모로서 매우 큰 편이며, 바닥에는 모두 마루를 깔아 알곡을 그대로 갈무리 할 수 있도록 하였다. 

황윤석 생가 안채

 

안채는 앞면 7칸, 옆면 2칸의 규모가 큰 초가집으로, 평면은 전형적인 남부지방 가옥 형태인 일자형이다. 안채의 대청 북쪽 툇간에는 붙박이 뒤주가, 그 뒤주 뒷벽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신 벽감이 있다. 이것은 다른 한옥에서 보기 드문 특징이다. 원래 조상의 위패는 안채 뒤편에 있는 사당에 모셨으나 화재 이후 사당을 복원하지 않고 안채에 벽감을 마련해 모신것이다.

황윤석 생가 안채 좌 · 우측면

 

황윤석 생가 안채 우측면

 

황윤석 생가 안채 후면

 

안체 뒷면의 뒤주와 벽감

 

황윤석 생가 장독대 

 

2024.05.20, 고창군  성내면,  황윤석 생가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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