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충청북도 109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3호_청주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3호 _ 청주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 (淸州 井下洞 磨崖毘盧遮那佛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1982.12.17 소재지 : 청주시 청원구 정하동 산9-1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하동에 있는 바위면에 새긴 마애불로다. 머리에는 마치 모자를 쓴 듯하며, 머리 뒤에는 동그란 머리광배가 표현되어 있다. 신체는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자연스럽게 흐르는 얇은 선의 옷주름 표현이 돋보인다. 왼손 검지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잡을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특징적인 손모양은 동화사 비로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이나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63호)과 비교된다. 직사각형의 얼굴, 잘룩한 허리, 볼륨있는 무릎 등에서 통일신라시대의 특징이 엿보이는 고려 초기의 작품이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92호_묘법연화경 권1~3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92호 _ 묘법연화경 권1~3 (妙法蓮華經 卷一~三) 수 량 : 3권1책 지정일 : 2008.04.11 소재지 : 청주시 흥덕구 직지로 113번지 청주고인쇄박물관 시 대 : 1382 「묘법연화경」은 천태종의 근본경전이며,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경」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사상의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우리나라에서 유통된 불교경전 가운데 가장 많이 간행된 경전이다. 이 「묘법연화경」은 고려 우왕 8(1382)년경에 간행된 목판본으로 추정되며 중국 송나라 계환이 정강 정미(1127, 고려 인종 5)년에 주해한 것을 저본으로 간행한 소자본이다. 3권1책(권1-3)의 영본이나 보물 제960호와 동일한 판본이다. 보물 제960호의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9호_청주 최명길 신도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9호 _ 청주 최명길 신도비 (淸州 崔鳴吉 神道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80.01.09 소재지 :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253-3 시 대 : 조선 숙종28년(1702)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묘앞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최명길(1586∼1647)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최명길은 선조 38년(1605)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을 거쳐 예문관 전적이 되었다. 그러던 중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유폐하고 정치가 날로 어려워지자 인조를 추대하는 인조반정에 가담하였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에는 청나라를 배척하는 당대 여론에 맞서 현실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하였다. 청의 군대가 물러간 뒤 우의정이 되어 왕을 위로하고 흩어진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36호_보은 법주사 가경구년명 철종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36호 _ 보은 법주사 가경구년명 철종 (報恩 法住寺 嘉慶九年銘 鐵鍾) 수 량 : 1구 지정일 : 2004.07.09 소재지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209번지 시 대 : 조선 순조 4년(1804) 법주사 범종은 조선 순조 4년(1804) 7월에 대시주 1명과 15명의 일반시주자의 시주를 받아 4천근의 동으로 제작된 청동종이다. 종신(鐘身) 하단에는 “가경구년갑자칠월일대법주사대종중사천근(嘉慶九年甲子七月日大法住寺大鐘重四千斤)” 이라는 명문(銘文)이 음각되어 있고, 시주자와 당시의 주지(住持), 만든이 등이 새겨져 있어 제작연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조선 후기의 종이다. 크기는 높이 212.5cm, 종신부 상단 지름 82cm, 종신부 하단 지름 140cm인데, 종신의 전체 선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33호_보은 법주사 선희궁 원당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33호 _ 보은 법주사 선희궁 원당 (報恩 法住寺 宣喜宮 願堂) 수 량 : 1곽(42.99㎡) 지정일 : 2004.01.09 소재지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209번지 법주사 대웅보전(보물 제915호)의 전면 우측에 위치한 이 건물은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 수 없으나 1765년경 조선 영조의 후궁인 영빈이씨(暎嬪李氏)의 위패를 봉안하였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선희궁 원당’으로 조영되었다고 한다. 그 뒤 법주사와 관련이 있는 역대 큰스님들의 초상을 모셔둔 ‘조사각(祖師閣)’으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비워진 상태이다. 법주사에서는 ‘구(舊) 조사각(祖師閣)’으로 불리우고 있다. 조사각으로 사용할 때에는 중앙 좌우로 개산시조(開山始祖) 의신선사(義信禪師)와 전법초조(傳法初祖) 태고선사..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4호_보은 법주사 석옹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4호 _ 보은 법주사 석옹 (報恩 法住寺 石瓮) 수 량 : 1기 지정일 : 2000.12.22 소재지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209번지 시 대 : 통일신라 법주사 석옹은 우리나라에 유사한 사례가 없고 제작연대에 대한 기록이 없어 조성 시기나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과거 법주사에 승려 3000명이 거주할 당시 김치독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내부에 염분이 검출되고 있어 채소류 등의 저장시설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크기는 깊이 240㎝, 윗부분의 바깥지름 240㎝, 안쪽지름 85㎝ 정도이다. 위와 아래는 각각 하나의 돌을 깎아 항아리 모양으로 만들고 배 부분은 30∼40㎝ 크기의 돌 4∼5장을 둥그스름하게 가공하여 원형으로 이은 것을 3단으로 쌓..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07호_보은 법주사 복천암 삼세불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07호 _ 보은 법주사 복천암 삼세불도 (報恩 法住寺 福泉庵 三世佛圖) 수 량 : 1폭 지정일 : 2009.09.11 소재지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산1-19번지 사적기에 따르면, 복천암은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창건되어 고려시대 태조 1년(918) 證通국사, 선종 1년(1084) 導生僧痛, 예종 2년(1107) 慈淨國尊에 의해 각각 중수가 이루어졌다. 조선시대는 세종 31년(1449) 信眉선사가 중수했고, 영조 11년(1735)에 소실된 암자를 卓融선사가 재창하였으며, 순조 3년(1803) 就俊師가 중수했다고 전한다. 복천암 극락보전 후불도는 1909년(隆熙 3)에 제작된 것으로, 389㎝(세로)×286㎝(가로)의 규모의 석가모니불․약사불․아미타불을 한 화면에 모..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05호_보은 법주사 복천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05호 _ 보은 법주사 복천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報恩 法住寺 福泉庵 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2009.09.11 소재지 : 속리산면 사내리 산1-19 복천암 극락전의 주불로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삼존상이다. 이 불상은 법당이 1733년 화재로 소실된 이후, 1735년부터 1737년까지의 중창불사 때에 법당과 함께 조성된 상이다. 1737년(건륭 2년)에 이루어진 복장 발원문은 다시 불상에 봉안되었는지 조사 때에는 볼 수 없었고, 『寺誌』(충청북도, 1982. P.254)에 수록되어 있어 참고할 수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 불상을 만든 조각장은 演機, 斗策, 守性, 超鵬, 守堅, 廣鵬 등임을 알 수 있다. 아미타불좌상을 본존상으로 하여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98호_보은 법주사 복천암 극락보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98호 _ 보은 법주사 복천암 극락보전 (報恩 法住寺 福泉庵 極樂寶殿) 수 량 : 1동 지정일 : 2009.03.06 소재지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산1-19번지 복천암은 사적기에 의하면 성덕왕 19년(720)에 창건되었으며 고려 태조 1년(918) 證通國師가, 선종 1년(1084) 導生僧痛, 예종 2년(1107)에 慈淨國尊이 중수하고, 조선 세종 31년(1449)에 信眉禪師가 중수하였다. 수차례에 걸쳐 중건되다 소실된 것을 영조 11년(1735)에 卓融禪師가 소실된 것을 재창하였으며 순조 3년(1803) 就俊師가 중수하였다. 복천암극락전은 1976년 해체 복원하였으며 내부에는 아미타불상과 후불탱화, 신미대사의 탱화가 보존되어 있으며 현판 무량수(無量壽)는 공민왕 친필로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호_보은 순조 태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호 _ 보은 순조 태실 (報恩 純祖 胎室) 수 량 : 1기 지정일 : 1975.08.20 소재지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산1-1번지 시 대 : 조선 태실(胎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넣어두던 곳으로, 이곳에는 순조의 태가 안치되어 있었다. 항아리에 태를 넣어두었던 것을, 순조가 왕위에 오른 후에 왕의 태실로서 여러 석물을 갖추고 태실비를 세웠다. 태실의 형태는 8각을 기본으로 한 부도(승려의 사리탑) 모양을 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8각의 돌난간이 둘러 놓았다. 앞에는 거북모양의 받침돌과 용을 새긴 머릿돌을 갖춘 태실비가 있는데, 앞면에 ‘주상전하태실(主上殿下胎室)’이라고 새겨 놓았다. 조선 정조 11년(1787)에 만든 것으로, 이 때부터 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