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찰

평화와 치유의 섬 '제주 불교의 중심', 제주 관음사

기리여원 2021. 12. 2. 09:51

제주 관음사에 있는 지정문화재

 

1.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6호 _ 관음사 목조관음보살좌상

2.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51호 _ 관음사의 왕벚나무자생지

 

관음사 대웅전

 

관음사(觀音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의 본사이다. 창건자 및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조선 숙종 때 제주목사였던 이형상(李衡祥)이 제주에 잡신이 많다 하여 많은 사당과 함께 사찰 500동을 폐사시켰을 때 폐허가 되었다.

 

현재의 관음사는 1909년 봄 비구니 봉려관(蓬廬觀)이 창건한 것이다. 봉려관은 제주도 사람으로 1901년 비양도(飛揚島)로 가는 길에 우연히 풍랑을 만나 사경에 이르렀을 때 관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나게 되자, 1907년 비구니가 되었다.

 

1908년 제주도로 돌아와 4월 경찬재(慶讚齋)를 열었다. 이후 주민들이 반대하여 죽이려 하므로 한라산으로 피신했다가, 1909년 봄 한라산에 관음사를 창건하였다.

 

1910년 용화사(龍華寺)에서 불상과 탱화를 모셔와 관음사에 봉안하였다. 19491월 제주4·3항쟁으로 전소되었고, 1968년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종루·산신각·불이문(不二門대방(大房) 등이 있다. 현재 이 절은 조계종의 본사로서 제주도의 말사 약 30여 개를 관장하고 있다.

 

한라산 관음사 일주문

 

 

일주문에서 천왕문로 가는 길

 

일주문에서 대웅전 가는 길이 마음이 편하고 심신이 시원한 길입니다.

 

관음사 천왕문

 

 

관음사 경내 전경

 

 

관음사와 4·3유적

 

1948년 4월 3일을 기하여 제주도 전역에 소요와 혼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에이르게 되는 사태의 진전을 통칭 4.3사건이라고 한다. 그 유젇들이 보전되어 4·3사태 진전시 제주의 참극이자 민족의 비극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해월당 봉려관 스님상

 

 

해월굴

 

 

해월굴

 

이 토굴은 본 관음사를 창건한 안봉려관 스님이 1908년 10월부터 3년간 기도 정진한 토굴이다.

안봉려관 스님은 관세음보살님의 선몽에 의하여 이 곳을 정하고 관음사 창건 당시부터 3년간 이 토굴에서 기도 정진하였다.

 

관음사 경내 전경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51호 _ 관음사의 왕벚나무자생지 (觀音寺의 왕벚나무自生地)

 

 왕벚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나무로 꽃은 4월경에 잎보다 먼저 피는데 백색 또는 연한 홍색을 띤다. 지형이 높은 곳에 자라는 산벚나무와 그보다 낮은 곳에 자라는 올벚나무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이란 설도 있으나, 제주도와 전라북도 대둔산에서만 자생하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관음사의 왕벚나무 자생지는 왕벚나무 자생지로서는 가장 많은 개체수를 이루고 있으며 꽃의 형질도 매우 우수하여 보존할만한 가치가 인정되어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관음사의 왕벚나무자생지

 

처음 자생의 왕벚나무가 발견된 것은 1908415일 서귀포시 서흥동 소재 성당의 프랑스인 따께신부에 의해서다. 현재까지 알려진 왕벚나무 자생지는 한라산 일대 산북지역으로, 특히 관음사 경내의 왕벚나무 4그루는 꽃이 매우 아름답고, 생육 상태도 양호하다.

 

관음사(觀音寺) 지장전(地藏殿)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옥에 몸소 들어가 죄지은 중생들을 교화, 구제하는 지옥세계의 부처남이다. 관음사의 지장전은 1948년 4·3항쟁 당시 불타버린 것을 1971년 故문달경 선생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지은 것이다

 

관음사(觀音寺) 지장전(地藏殿) 좌측면

 

 

관음사(觀音寺) 대웅전(大雄殿)

 

대웅전에는 중심에 불상을 모시는 수미단(須彌壇)과 신중(神衆)을 모시는 신중단((神衆壇)이 있고, 각 단마다 탱화를 모시며, 촛대와 향로 등을 마련해 두며, 법문을 포함한 중요한 불사가 대개 이곳에서 거행된다

 

관음사(觀音寺) 대웅전(大雄殿)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6호 _ 관음사목조관음보살좌상 (觀音寺木造觀音菩薩座像)

 

“관음보살좌상”은 1698년 제작되어 전남 영암 성도암에서 개금(改金), 해남 대흥사에 봉안됐다가 1908년 제주관음사를 재 창건한 안봉여관스님이 1925년 대흥사의 말사인 제주 관음사로 옮겨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체높이 75cm, 얼굴높이 14cm, 어깨너비 34cm, 무릎높이13cm, 무릎너비 47cm이다. 17세기말의 전형적인 불상 양식을 갖춘 이 불상은 등신대의 단아한 상으로 삼산보관(三山寶冠)을 따로 쓰고 있다. 보관 정면에 커다란 꽃무늬 8송이가 배치돼 있고 좌우로 장식이 있는 전형적인 조선후기 보관이다. 양감 있고 눈, 코, 입의 단아한 얼굴 표현, 유연한 옷주름은 당대 수작으로 평가된다.

 

관음사(觀音寺) 삼성각(三聖閣)

 

삼신 · 칠성 · 독성을 함께 모시는 전각으로 삼성신앙은 불교가 한국 사회에 토착화하면서 고유의 토속신앙을 불교에서 흡수하여 생긴 신앙형태이다.

 

관음사 설문대할망 소원돌

 

 

관음사(觀音寺) 사리탑(舍利塔)

 

이 사리탑은 1987년 6월 티베트 딜라이라마 스승의 후신(後身)인 링 린포체 존자로부터 사리 6과를 기중받아 사리탑을 세워 모시게 되었는데, 봉안불사 작업 중 1과가 늘어나서 현재는 7과가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다비를 통해 얻은 사리를 여덟나라가 나누어 가지면서 각기 탑을 세워 부처님처럼 모신것에서 유래되었다.

 

관음사(觀音寺) 범종각(梵鐘閣)

 

 

미륵대불(彌勒大佛)

 

미륵불은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든 뒤  56억 7천만년이 지나면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모든 중생을 교화하는 부처님이다. 미륵불의 세계인 용화세계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지혜와 계행을 담아 공덕을 쌓거나, 절을 세워 설법하거나, 탑과 사리를 공양하여 부처님의 법신을 생각하는 등의 공덕을 지어야 한다. 관음사의 미륵불은 2006년에 제주도민의 풍요로움과 안락을 기원하고 자비심을 닦아서 미륵불의 국토에 나도록 하자는 의미로서 조성되었다.

 

미륵대불로 내려오는 노루 포착

 

 

공덕비 및 부도탑

 

 

초전법륜상

 

초전법률상의 뜻은 부처님께서 깨치신 후 다섯 비구듥에게 처음 법을 설한 것을 기림. 쾌락과 고행의 두 극단의 길을 버리고 중도(中道)의 옳은 길을 설하시니 팔정도(八正道)와 사성제(四聖諦),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 그리고 연기법(緣起法)이었다.

 

2021.11.18. 제주 관음사

글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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