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찰

개화산 약사사(開花山 藥師寺)

기리여원 2021. 10. 22. 17:15

개화산 약사사에 있는 지정문화재

 

1.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9호 _ 약사사 삼층석탑

2.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0호 _ 약사사 석불입상 

 

약사사(藥師寺) 대웅전(大雄殿)

 

개화산 약사사(開花山  藥師寺)

소재지 : 서울 강서구 금낭화오17261

 

개화산(開花山) 약사사는 서울 강서구 관내 전통사찰 중 제1의 위상을 지닌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사찰입니다.

 

도량 중앙에는 삼층석탑(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9)과 석불(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0)이 모셔져있어 고려 후기의 창건 역사를 가늠케 합니다.

 

1486(성종 17)에 완성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약사사가 주룡산에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조선 후기 작성된 양천읍지(陽川邑誌)에 따르면 신라 때 주룡이라는 도인이 이 산에 머물렀다하여 주룡산(駐龍山)이라 이름하였고, 주룡 선생이 돌아간 후 기이한 꽃 한 송이가 피어 사람들이 개화산(開花山)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또한, 봉화를 받는 산이라 하여 개화산(開火山)으로도 불리었는데, 조선 초기 봉수대가 설치되어 전라도 순천에서 올라오는 봉화를 받아 남산 제5봉수에 전하였다고 합니다.

 

1737년에 이르러 송인명(宋寅明)이 개화사(開花寺)에서 공부하고 재상이 되어 그 인연으로 절을 중수하였고, 순조 이후에는 약사사(藥師寺)로 개칭하였습니다. 1827년 송숙옥(宋叔玉)이 쓴 개화산약사암중건기(開花山藥師庵重建記)에 의하면 약사암이라 하고 삼한고찰(三韓古刹)로 표기하였습니다. 조선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謙齋鄭歚, 1676~1759)은 개화사(開花寺)라는 제목으로 사찰과 주변 풍경을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1911년에는 일제의 사찰령에 의해 약사암은 잠시 봉은사의 말사가 되었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소속사찰입니다. 1928년에는 원표스님이 약사전을 고쳐지었고, 1984년 설호스님이 다시 고쳐지었으며, 1988년 요사채와 범종각을 신축하였습니다. 2015년에는 기본교리 27기를 배출하였고, 종단으로부터 정식인가를 받아 불교대학 1기생을 배출하였습니다.

 

약사사(藥師寺) 표지판

 

 

약사사 솟을입간판

 

 

약사사 연혁(藥師寺 沿革) 

 

 

약사사(藥師寺)  전경

 

 

약사사(藥師寺) 범종각(梵鐘閣)

 

 

약사사(藥師寺) 범종(梵鐘)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9호 _ 약사사 삼층석탑 (藥師寺 三層石塔)

 

이 탑은 원래 약사사 석불 입상이 모셔져 있던 금당 바로 앞에 서 있던 삼층석탑으로 약사사의 역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개화산 중턱에 있는 이 탑은 한강을 내려다보면서 서 있는데, 그 모습이 투박한듯하면서도 날렵하다.

 

이 석탑은 일층 기단과 삼층 탑신으로 구성된 독특한 형식이다. 석탑의 받침부(基壇部)에는 사각형 지대석 위에 큼직한 사각형 기단과 판석으로 된 갑석이 놓여 있다. 다소 육중한 기단 위에는 갓기둥(隅柱)이 있는 1층 탑신과 큼직하고 가파른 지붕돌(屋蓋石)이 놓여 있고, 다시 2•3층 탑신과 지붕돌이 올려 있다. 탑의 몸체부(塔身部)는 투박한 받침부에 비해서 날렵한 모양이다.

 

이 석탑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의 희귀한 석탑의 예로 그 가치가 크다.

 

 약사사 삼층석탑

 

 

감로당(甘露堂)

 

 

감로당(甘露堂)

 

감로당은 스님들이 생활하시는 공간인 요사채(寮舍寨)와 신도들의 기도접수 및 신행상담을 할 수 있는 종무소가 함께 있는 공간입니다.

건물 규모는 앞면 6칸·옆면 4칸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의 목조건축물이다. 마당을 향한 전면에는 툇마루도 설치하였다.

 

개화산 약사사(開花山 藥師寺) 편액

 

이 편액은 석정(石鼎)스님의 필치(筆致)이다

 

감로당(甘露堂) 편액

 

이 편액도 석정(石鼎)스님의 필치(筆致)이다

 

약사사(藥師寺) 대웅전(大雄殿)

 

 약사사 대웅전은 1988년에 중건되었습니다. 정면5칸, 측면 2칸 규모로, 다포계 팔각지붕에 청기와를 이고 있습니다. 전면에는 꽃과 나무 그리고 그 사이에 여러 가지 동물들을 돋을새김한 다채로운 사분합문(四分閤門)이 설치되어 있으며, 측변과 후면은 팔상성도와 나한도를 벽화로 모셨습니다. 화려한 금단청으로 장엄하였으며 특히 좌우측 기둥에는 용문양 단청이 생동감 있습니다.
대웅전 안쪽 상단에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0호인 석불 약사여래 부처님을 중심으로 하여 중앙 석가모니불, 좌우로 약사여래불,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님을 모셨고, 배면에는 빼곡히 소불을 모셨습니다. 법당의 좌우측면에는 신중탱(神衆幀)과 감로탱(甘露幀)이 모셔져 있는데, 신중탱은 1989년에, 그리고 감로탱은 1990년에 각각 봉안하였습니다.

 

약사사(藥師寺) 대웅전(大雄殿) 현판

 

 

약사사(藥師寺) 대웅전(大雄殿)

 

 

약사사(藥師寺) 대웅전(大雄殿) 측면

 

 

대웅전 내부

 

석불 약사여래 부처님을 중심으로 하여 좌측부터 보현보살, 아미타불, 지장보살, 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 약사여래불, 문수보살을 모셨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0호 _ 약사사 석불입상 (藥師寺 石佛立像)

 

이 불상은 약사사 금당에 모셔진 석불 입상이다. 약사사는 고려 말과 조선 초기 사이에 김포의 개화산 중턱에 세워진 사찰이다.

 

이 불상의 머리 위에는 갓모양의 지붕돌이 놓여 있다. 순박해 보이는 얼굴은 긴 타원형이고 눈과 코는 크고 입은 작다. 어깨를 움츠린 듯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곧게 뻗은 몸체가 부피감 없이 돌기둥 모양으로 서 있다. 길게 내려간 팔꿈치에서 가슴으로 모아진 팔은 매우 가늘며 작은 두 손에 꽃 가지를 들고 있어서 미륵불 입상임을 알 수 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조성된 석불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이 불상의 가치는 매우 크다.

 

약사사(藥師寺) 삼성각(三聖閣)

 

삼성각은 칠성여래, 나반존자, 산왕대신(산신) 세분의 성인을 모신 전각(殿閣)입니다.

 

칠성여래, 나반존자, 산왕대신(산신) 

 

 

감로당에서 바라본 전경

 

2021.10.03, 서울 강서구 약사사

글 문화재청, 약사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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