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물

보물 제1509호_허목 초상

기리여원 2023. 12. 16. 09:22

 

보물 제1509호 _ 허목 초상 (許穆 肖像)

 

수    량 : 1점

지정일 : 2007.02.27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 1794

 

조선중기 대표적 학자이자 문신인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의 초상으로 오사모에 담홍색의 시복(時服)을 입고 서대(犀帶)를 착용한 좌안7분면의 복부까지 오는 반신상이다. 화폭 상부의 제발문에 따르면 1794(정조18) 정조가 허목의 인물됨에 크게 감동하여 그 七分小眞을 얻고자 채제공으로 하여금 사람들과 의논하도록 하였으며 이에 은거당(恩居堂, 1678년 숙종이 하사한 집)에서 선생의 82세진을 모셔다가 이명기가 모사한 것이라고 한다. 영정의 오른 쪽에는 채제공이 당시에 쓴 표제가 붙어 있다.

 <허목 초상>은 생시 진상은 아니지만 현재 원본이 전해오지 않는 실정에서 17세기 대표적인 사대부초상화의 형식을 보여줌과 아울러, 노학자의 문기어린 풍모를 잘 전달해낸 당대 최고의 어진화사(御眞畵師) 이명기의 솜씨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하겠다.

Ο 규격(세로x가로) : 72.1 x 56.8 cm(그림), 28.6 x 65.8 cm(발문)

 

허목 초상 (許穆 肖像)  _ 그림 이명기(李命基, 1756~1813이전) 1794년(정조 18) 모사, 글 체제공(蔡濟恭, 1720~1799) 1797년(정조 18). 비단에 색(그림), 비단에 먹(글씨)

 

초상화로 정치하는 정조

 

정조는 남인 게열 영수 허목(1595~1682)의 82세 초상화를 가져오라고 하여 당시 뛰어난 초상화가에게 그리도록 했습니다. 선대왕의 명신이었던 허목 초상화를 베껴 그림으로써 채재공(1720~1799) 및 남인의 지지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허목 초상화가 도성으로 들어오고 떠나는 날 남인들이 모두 모였다고 합니다. 정조는 당색을 가리지 않고 옛 신하들의 초상화를 가져오라고 하여 조정에서 신하들과 함께 보고 그 인물을 칭송하는 글을 지어 내렸습니다.

 

2023.12.15, 국립중앙박물관_탕탕평평

글 문화재청, 전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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