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물

보물 제590호_강세황 초상

기리여원 2023. 12. 16. 17:24

보물 제590호 _ 강세황 초상 (姜世晃 肖像)

 

수    량 : 2폭

지정일 : 1975.05.16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 조선 정조 6, 7년

 

<강세황초상(姜世晃肖像)>은 조선 후기 대표적 문인 서화가인 강세황이 직접 자신을 그린 자화상과 이명기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강세황의 초상화 등 2폭의 영정이다. 자화상의 크기는 가로 51 세로 88.7이고, 다른 초상화는 가로 94 세로 145.5 크기이며, 모두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강세황(17131791)은 시, 글씨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뛰어나 그의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하였다.

자화상은 검은색 관모에 진한 옥빛의 도포차림의 모습이고 이명기가 그린 초상화는 관복에 관모를 착용하였다. 두 그림 모두 똑같은 얼굴의 각도를 하고 시선이 오른쪽을 향하고 있으며, 의자에 앉은 전신의 모습을 그렸다. 얼굴을 표현함에 있어 주름은 색을 덧칠하여 윤곽을 나타냈으며, 오목한 부분은 그림자를 사용하여 입체감을 주었다.

자화상은 강세황의 71세 때의 모습을 그린 것이며, 다른 한점의 그림은 입고 있는 옷이 다르기는 하지만 영정그림에 뛰어났던 이명기가 그린 것이다. 초상화에서 손가락 마디의 생김새까지 표현한 것은 조선시대 전반기까지 거의 없었던 것으로, 회화사적으로 볼 때 의미있는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강세황 초상 (姜世晃 肖像)  _ 그림 이명기(李命基, 1756~1813이전) 1783년(정조 7), 글 정조正祖 1793년(정조 17), 글씨 조윤형(曺允亨, 1725~1799) 1793~1799년, 비단에 색, 진주강씨 백각공파 종친회 소장

 

초상화와 글로 깊어진 인연

정조는 초상화로 군신 관계를 돈독히 다진 영조처럼 빈번히 신하들의 초상화 제작을 지시했습니다.
1783년 강세황(1713~1791)이 70세에 이상 고위직 관리의 모임인 기로소에 들어가자 정조는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 이명기에게 초상화를 그리게 했습니다. 이명기는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무수한 잔붓질과 깊이 있는 색감으로 강세황이 눈앞에 있는 듯 그려냈습니다. 강세황이 죽은 지 2년 뒤, 정조는 그의 재능을 아끼는 마음을 담아 글을 지어 내렸고, 이 글은 초상화에 적혀 있습니다.

 

강세황 초상 (姜世晃 肖像) 

 

표암 강공 칠십일세 진영

어제 제문

 

탁 트인 흉금, 고상한 운치, 서화는 거친 자취일 뿐

붓을 휘둘러 수만 장 글씨를 궁중의 병풍과 시전지에 썼네

판서 지냈으니 벼슬은 낮지 않은데 삼절은 당나라 정건(鄭虔, 705~764)의 수준일세.

중궁에 사신으로 갔다가 기로서 서루(西樓)에 선배 뒤를 따라 들어갔네.

인재를 얻기 어려운 생각에 거친 술이나마 내리노라.

 

조윤형( 曺允亨, 1725~1799)이 삼가 쓰다.

 

2023.12.15, 국립중앙박물관_탕탕평평

글 문화재청, 전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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