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충청남도 59

충청남도 기념물 제158호_부여 수신리 반송

충청남도 기념물 제158호 _ 부여 수신리 반송 (扶餘 水新里 盤松) 수 량 : 1주 지정일 : 2002.01.10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로신근북길 50-15 (수신리) 외산면 소재 성태산(631m)이 동쪽으로 뻗은 지맥의 낮은 산록에 서 있는 독립노거수로 그 아래는 소류지와 접해 있다. 유래나 전설 등은 발굴된 것이 없으나 소유주 김용주가 선조로부터 물려 받아 특별히 관리해오던 나무이다. 나무의 수령은 근원부 및 흉고 부근의 직경이나 수고 그리고 나무의 수형이나 수세 등을 고려해 볼 때 400여년 내외로 추정된다. 원정형수형을 가진 이 반송은 지상 50㎝ 지점에서 줄기가 8갈래로 갈라졌으며 그 갈라진 분지로 인해 가지가 잘 발달되어 장엄한 형태이다. 토양이 비옥하고 배수가 잘되며 일조량이 ..

충청남도 기념물 제27호_논산 갈산리 곰솔

충청남도 기념물 제27호 _ 갈산리 곰솔 (葛山里 곰솔) 수 량 : 2주 지정일 : 1982.08.03 소재지 : 충남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 산26-22번지 곰솔은 소나무과로 잎이 소나무 잎보다 억세기 때문에 곰솔이라고 부르며, 소나무의 겨울눈은 붉은 색인데 반해 곰솔은 회백색인 것이 특징이다. 바닷가를 따라 자라기 때문에 해송으로도 부르며, 줄기 껍질의 색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이라고도 한다. 바닷바람과 염분에 강하여 바닷가의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나, 해일의 피해를 막아주는 방조림으로 많이 심는다. 나무의 나이는 3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동쪽 곰솔은 높이 16m, 둘레 2.63m이고, 남쪽 곰솔은 높이 12.5m, 둘레 2.20m이다. 이 곰솔은 쌍군송이라고도 부르는데, 조선 효종 때 예조..

충청남도 기념물 제40호_부여 산직리 지석묘

충청남도 기념물 제 40호 _ 부여 산직리 지석묘 (扶餘 山直里 支石墓) 면 적 : 4,876㎡ 지정일 : 1982.12.31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초촌면 산직리 562번지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산직리의 ‘바우재’또는 ‘쇠울’이라 불리우는 구릉에 동서로 2기의 고인돌이 나란히 있다. 동쪽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 5.8m, 너비 3.7m의 크기이며, 하부구조는 모두 파헤쳐져..

충청남도 기념물 제63호_서산 둔당리 지석묘

충청남도 기념물 제63호 _ 서산 둔당리 지석묘 (瑞山 屯堂里 支石墓) 수 량 : 1기 지정일 : 1986.11.19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둔당리 산 25-5 지석묘는 청동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서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뚜껑돌을 덮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서산 둔당리의 얕은 야산에 있는데, 원래는 2기의 고인돌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1기가 파괴되어 없어졌고, 지금 남아 있는 고인돌도 일제 때 도굴되었다고 한다. 형태상 ..

충청남도 기념물 제3호_홍산 만덕교비

충청남도 기념물 제3호 _ 홍산 만덕교비 (鴻山 萬德橋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73.12.26 소재지 : 충남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11-2번지 시 대 : 조선시대(숙종7년 1681) 홍산 시가지 북쪽에 흐르던 홍산천에 ‘만덕교’라는 돌다리를 놓은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홍산 읍내로 들어가는 큰 관문이 되었던 만덕교의 건립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고, 비는 원래 다리 옆에 있었으나 다리가 없어진 뒤, 홍산초등학교로 옮겼다가 다시 지금의 자리인 홍산객사내로 옮겨온 것이다. 비는 비몸돌과 머릿돌을 하나의 돌로 만들어 세웠으며, 머릿돌에는 구름무늬를 새겼다. 조선 숙종 7년(1681)에 세운 것으로, 비문에는 객사 동쪽에 시내가 있으나 다리가 없어, 첨지 서덕해가 오랜 기간에 걸쳐 무지개모양의..

단풍에 물든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2022.11.06)

충청남도 기념물 제194호 _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 (扶餘 鴻山客舍 銀杏나무) 수 량 : 1주 지정일 : 2019.12.02 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211-1 시 대 : 조선시대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7호 「홍산객사」 우측에 있는 은행나무로 대부분은 암나무의 수령이 오래된 것이 많은데 홍산객사은행나무는 약 750년 된 수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다. 더불어 홍산객사의 건립시기를 고려시대로 추정해 볼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홍산객사 및 주변 마을의 역사와 문화적 사실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나무로 역사적, 문화적, 경관적 가치가 높다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 표지판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 홍산객사 은행나무는 약 750년 된 수나무로 뿌리 둘레 약 11m 높이 ..

노랗게 물든 논산 성동 은행나무(2022.11.06)

충청남도 기념물 제152호 _ 성동 은행나무 (城東 銀杏나무) 수 량 : 1주 지정일 : 2000.01.11 소재지 : 충남 논산시 성동면 금백로 475 (개척리)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성동 은행나무는 나이가 450∼493년 정도된 것으로 추정되며, 강경에서 성동면 개척리로 들어오는 도로변 왼쪽에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문장과 시문이 뛰어나면서 도술 또한 능통한 전우치가 기묘사화(1..

충청남도 기념물 제156호_태안 흥주사 은행나무(2022.11.05)

충청남도 기념물 제156호 _ 태안 흥주사 은행나무 (泰安興住寺銀杏나무) 수 량 : 1주 지정일 : 2001.06.30 소재지 : 충남 태안군 태안읍 속말1길 61-61 (상옥리) 시 대 : 고려시대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태안 흥주사 은행나무는 태안읍 백화산(白華山)에 있는 흥주사의 약 40m 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흥주사 경내에는 만세루와 삼층석탑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아득히 먼 옛날 먼길을 가던 노승이 백화산 산기슭에..

충청남도 기념물 제138호_예산 향교

충청남도 기념물 제138호 _ 예산향교 (禮山鄕校) 면 적 : 2,731㎡ 지정일 : 1997.12.23 소재지 : 충남 예산군 예산읍 향교길 31 (향천리)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예산향교는 조선 태종 13년(1413)에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순조 9년(1809)에 크게 수리하였으며, 1975년과 1976년에 동재와 서재를 보수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서재 등이다. 제사 공간인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인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

충청남도 기념물 제66호_예산 호서은행본점

충청남도 기념물 제66호 _ 예산 호서은행본점 (禮山 湖西銀行本店) 수 량 : 1동 지정일 : 1987.12.30 소재지 : 충남 예산군 예산읍 사직로 2 (예산리) 민족 금융기관이었던 호서은행의 본점 건물이다. 충청남도 서북지역의 교통 및 상업 중심지에 자리한 호서은행은 조선총독부가 들어선 후 더욱 더 심해진 일본의 금융압박 속에서도 민간자본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던 민족계 지방은행이다. 2층의 서양식 건물로, 중후한 멋과 비례감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1, 2층의 창문을 하나로 연결하여 근대적인 감각을 살렸으며, 출입구 부분을 돌출시켜 그 위의 지붕을 곡선으로 처리하는 등 앞면을 강조하였다. 1913년 지역의 민간유지들에 의해 건립된 이 건물은 작은 규모이면서도 당당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