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인천광역시 24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7호_보문사 석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7호 _ 보문사 석실 (普門寺 石室) 수량/면적 : 1동 / 282,054.1㎡ 지정(등록)일 : 1995.03.02 소 재 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1 보문사에 있는 석굴사원으로, 나한상(羅漢像)을 모시는 나한전의 구실을 한다.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무지개 모양을 한 3개의 문을 만들고, 그 안에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마련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 ·제화갈라보살, 나한상 등을 모셔두었다. 이 석불들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한 어부가 고기를 잡다가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꿈에 나타난 대로 모셔 두었더니 큰 부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불상의 제작연대는 그처럼 오래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보문사 석실 표지판 보문사 석실 우측 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9호_보문사 마애석불좌상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9호 _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普門寺 磨崖石佛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남로828번길 44 (삼산면) 보문사 금강산 표훈사의 주지인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1928년 낙가산 중턱 일명 눈썹바위 암벽에 조각한 석불좌상으로, 높이 9.2m, 폭 3.3m이다. 머리에는 커다란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네모진 모습이다. 얼굴에 비해 코는 넓고 높으며, 귀는 투박하고 목은 매우 짧게 표현되었다. 옷은 각이 진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가슴에는 큼직한 卍자무늬가 새겨져 있다. 손에는 깨끗한 물을 담은 병을 들고 연꽃무늬 대좌(臺座) 위에 앉아 있으며, 불신 뒤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가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2호_강화 온수리 성공회 성당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2호 _ 강화 온수리 성공회성당 (江華 溫水里 聖公會聖堂) 수량/면적 : 1동 / 618㎡ 지정일 : 2003.11.10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온수길38번길 14 (길상면) 강화 온수리 성공회성당 시 대 : 1906년 이 교회는 1906년 영국인 주교 조마가(Mark N. Trollope)가 지은 성당 건물로 우리나라의 초기 서양 기독교 교회양식의 건물이다. 성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중앙 1칸을 2층 종루로 삼은 문루와 정면 9칸 측면 3칸의 본당으로 이루어진 건물인데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기법을 활용하여 종교적인 성당건축 방법과 공간 구성을 확립한 동서 절충식 강당형의 목조건물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고, 용마루 양끝에는 연꽃 모양으로 된 곡선미를 살린 돌..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3호_후애돈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3호 _ 후애돈대 (後崖墩臺) 수량/면적 : 1기 / 1,064㎡ 지정일 : 1995.11.15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954 돈대란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두는 초소로, 밖은 성곽으로 높게 쌓고 그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둔다. 강화 53돈대 중의 하나인 이 돈대는 화강암을 이용해 정사각 모양으로 쌓아올렸으며, 대포를 올려놓는 받침대를 4개 설치하였는데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성 위로 낮게 쌓은 담의 일부가 유일하게 남아있어, 1998년에 완전 복원해 놓았다. 인근 마을에는 이 돈대를 훼손하면 재앙이 온다는 전설이 내려오는데, 이 때문에 돈대를 제단처럼 여기고 보호하..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_강화 온수리 성공회 사제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 _ 강화 온수리 성공회 사제관 (江華 溫水里 聖公會 司祭館) 수량/면적 : 1동 /314.9㎡ 지정일 : 2002.02.04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505-11 강화 온수리 성공회 사제관은 우리나라에 성공회가 처음으로 전파되기 시작할 때, 초대 선교사 고요한 주교와 함께 영국으로부터 내한한 조마가 신부가 1896년 강화에 부임하여 선교를 하면서 2년 후인 1898년에 건축한 건물이다. 이후 사제관이 퇴락하자 1933년 원형 그대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사제관은 영국 성공회가 선교를 시작하면서 영국인 신부가 한국전통 주거문화 속에 어떻게 적응하고 왔는가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주거공간으로, 또 건축수법이나 치목형식에서 완전히 한국적인 것만이 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8호_적석사 사적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8호 _ 적석사 사적비 (積石寺 事蹟碑) 수량/면적 : 1기(71,704㎡) 지정일 : 2001.04.02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연촌길 181 (내가면) 시 대 : 숙종40년(1714) 적석사는 ¨전등사본말사지¨등의 기록에 의하면 백련사 및 청련사와 함께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창건되었고, 처음에는 적련사(赤蓮寺)였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적석사를 오르는 길목 오른쪽에 자리한 적석사 사적비는 숙종 40년(1714)에 세워진 것으로 전체 높이가 3m94cm이고 비신의 높이 3m4cm, 너비 69cm이다. 사적비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지붕모양의 뚜껑돌이 얹혀 있으며 비신의 상부에 ¨고려산적석사지비(高麗山積石寺之碑)¨라는 비의 제목이 있다. 비문에는 불교의 전래 및 사..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4호_강화 향교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4호 _ 강화향교 (江華鄕校) 수량/면적 : 1곽 / 2,460㎡ 지정일 : 1995.11.15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향교길 58 (강화읍) 성현들에게 제사지내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세웠던 국립교육기관으로 고려 인종 5년(1127) 세웠다. 그 뒤 여러 차례 옮기고 복원하였는데, 지금 있는 위치는 영조 7년(1731) 유수 유척기가 옮긴 것이다. 남아있는 건물로는 제사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 교육공간인 명륜당을 비롯해 여러 부속 건물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제사와 교육의 기능을 담당했으나, 교육기능은 사라지고 지금은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다. 강화향교 표지판 강화향교 홍살문 강화향교 (江華鄕校) 공적비(功績碑) 강화향교 (江華鄕校)..

남과 북의 강이 하나가 되어 흐르는 연미정,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_연미정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 _ 연미정 (燕尾亭) 수량/면적 : 1동 / 2,149㎡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월곳리 242 자연경관을 보며 풍류를 즐기거나 학문을 공부하던 정자이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강화해협으로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한다. 언제 처음 지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나 고려 고종(재위 1213∼1259)이 사립교육기관인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 한다.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곳이기도 하다..

철종이 왕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_용흥궁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 _ 용흥궁 (龍興宮) 수량/면적 : 3동 / 2,496㎡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동문안길21번길 16-1 (강화읍, 용흥궁)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이름을 붙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용흥궁은 청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따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든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 용흥궁 표지판 용흥궁 전경 용흥궁 전경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0호_강화 석수문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0호 _ 강화 석수문 (江華 石水門) 수량/면적 : 1기 / 77.5㎡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883-1 강화읍의 중심부를 흐르는 동락천 위에 설치하였던 수문이다. 조선 숙종 37년(1711)에 강화산성의 내성을 쌓을 때 연결하여 처음 설치하였으나, 광무 4년(1900)에 갑곶 나루터의 통로로 삼기 위하여 개천 어구에 옮겼다. 그 뒤 1977년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길이는 18.2m이고 높이는 2.7m, 너비는 4.7m이다. 무지개 모양의 수문이 3개이며, 화강암을 다듬어 쌓았다. 강화 석수문 표지판 강화 석수문 강화 석수문 강화 석수문 강화 석수문 강화 석수문 천정 강화 석수문 강화 석수문 강화 석수문 강화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