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리여원 4696

보물 제1923호_정조 어찰첩

보물 제1923호 _ 정조 어찰첩 (正祖 御札牒) 지정일 : 2016.11.16 시 대 : 조선 은 정조가 1796~1800년 사이에 좌의정 등 고위직을 역임한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로 300통에 달하는 다양한 내용의 어찰이 6첩으로 장첩되어 있다. 이 어찰의 내용은 대부분 정사(政事)와 관련된 것들이어서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사료이다. 어찰에 사용된 종이 또한 도침이 잘 된 고급 간지(簡紙) · 태지(苔紙), 심지어 저급의 용지로 취급되는 피지(皮紙)까지 일부 사용되었으며, 일반적인 서간문의 격식과는 매우 다른 서간문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조선시대 서간문의 형식을 연구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어찰의 전체 내용이 자세히 구명되면 정조의 ..

문화재/보물 2017.06.03

보물 제1901-2호_조선왕조의궤

보물 제1901-2호 _ 조선왕조의궤 고종대례의궤 2017.05.21. ▼ 2021 장서각 특별전_장서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입니다. 보물 제1901-2호 _ 조선왕조의궤 (朝鮮王朝儀軌), 숙종인현왕후도감의궤 수 량 : 291건 384책 지정일 : 2016.05.03 소재지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운중동, 한국학중앙연구원) 시 대 : 조선 후기 *지정사유 의궤(儀軌)란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이라는 뜻으로 ‘국가전례의 따라야할 기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는 조선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대표적인 국가기록물이다. 또한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조선만의 독특한 전통으로서 예법을 중시하고 기록을 철저..

문화재/보물 2017.06.02

보물 제1883호_고려 오백나한도

보물 제1883호 _고려 오백나한도 (高麗 五百羅漢圖) 수 량 : 6폭 지정일 : 2016.01.07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 고려시대 고려시대 나한신앙은 특정시기에 국한되지 않고 전 시기에 걸쳐 유행하였으나, 그 신앙의 내용을 불교회화라는 조형언어로 시각화한 것은 몇 폭밖에 남아 전하지 않는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고려 오백나한도 중 제92 守大藏尊者, 제125 辰寶藏尊者, 제145 喜見尊者, 제170 慧軍高尊者, 제357 義通尊者, 제427 願圓滿尊者 등 6폭을 소장하고 있다. 제92 수대장존자는 두손으로 방광하는 사리병을 받쳐 들고 있으며, 제125 진보장존자는 신통력을 부리는 모습이며, 제145 희견존자는 먼 곳을 바라보며 깊은 사유..

문화재/보물 2017.05.24

보물 제1900호_주역참동계

보물 제1900호 _ 주역참동계 (周易參同契) 수 량 : 2권2책 지정일 : 2016.05.03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서구 양천로17길 36(가양동, 겸재정선미술관) 시 대 : 1441년(세종 23)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는 후한조(後漢朝) 위백양(魏伯陽, 100~170)의 저술로 도가(道家)의 심신수련(心身修練)의 방식과 장생불노(長生不老)를 위하여 복용하는 단약(丹藥)의 제조법에 관하여 4~5자의 운문(韻文)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정 대상 「주역참동계」는 명조(明朝)초기에 장본진(張本鎭, ?~?)이 송말원초(宋末元初)에 유염(兪琰, 1258~1327)이 저술한 「주역참동계발휘(周易參同契發揮)」(3편)와 「주역참동계석의(周易參同契釋疑)」(3편)를 합본(合本)하여 간행한 것을 저본(底本)으로..

문화재/보물 2017.05.24

보물 제1882-1호_고려 십육나한도(제7가리가존자)

보물 제1882-1호 _ 고려 십육나한도(제7 가리가존자) (高麗 十六羅漢圖(第七 迦理迦尊者)) 수 량 : 1폭 지정일 : 2016.01.07 소재지 : 부산광역시 수영구 시 대 : 1236년(고려고종23년) 이 나한도는 16나한도 중 제7 존자인 가리가존자를 표현한 것으로, 의자에 앉아 고요하게 사색하는 이국적인 모습의 수행자를 수묵담채로 담담하게 담아내었는데, 바위와 수목을 배경으로 하는 고려 오백나한도와 확연히 구분되는 도상적 특징이다. 이 작품은 국토의 태평, 국왕의 장수 등을 발원하며 병신년에 그려진 것인데, 필선과 색채, 표현방식 등에서 1235년에서 1236년 사이에 제작된 고려 나한도와 거의 같은 내용과 형식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제작시기인 丙申年은 1236년으로, 다른 나한도..

문화재/보물 2017.05.24

보물 제1823호_농경문 청동기

보물 제1823호 _ 농경문 청동기 (農耕文 靑銅器) 수 량 : 1점 지정일 : 2014.05.08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 철기시대 ‘농경문 청동기(農耕文靑銅器)’는 한 면에 밭을 일구는 남성과 새 잡는 여성, 다른 한 면에는 나뭇가지 위에 새가 앉아 있는 장면을 새긴, 청동 의기(儀器)로 추정되는 유물이다. 하반부가 결실되었으나 같은 시기의 다른 청동기와 달리 당대의 생활상과 신앙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남성이 밭을 일구는 장면은 한 해가 시작되는 초봄에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의례 가운데 파종을 나타낸 것으로, 조선 후기 함경도, 평안도 지역에서 행해졌던 나경(裸耕), 혹은 기경속(起耕俗)을 연상시킨다. 그 하단의 인..

문화재/보물 2017.05.22

국립고궁박물관_현판으로 보는 대한제국 황궁 경운궁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현판으로 보는 대한제국 황궁 경운궁 慶運宮 일시 : 2017.04.24~05.14 장소 : 국립고궁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2 현판으로 보는 대한제국 황궁의 역사 1897년 2월, 1년여 간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렀던 고종이 경운궁(慶運宮, 지금의 덕수궁德壽宮)으로 돌아왔다. 고종은 환궁을 준비하며 1896년부터 경운궁 조영을 시작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잠시 거처했고, 광해군과 인조가 즉위했던 곳이지만 200년이 넘도록 조선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적 없었던 조용한 정릉동 행궁이 제국의 황궁으로 선택된 것이다. 그해 10월 고종은 경운궁 태극전太極殿(즉조당 卽阼堂)에서 황제 즉위와 대한제국 설립을 선언하였고 경운궁은 근대도시로 변해가는 한성의 중심이자 근대화된 제국의 걸맞은 모..

카테고리 없음 2017.05.11

보물 제1618-2호_국새 황새지보

보물 제1618-2호 _ 국새 황제지보 (國璽 皇帝之寶) 수 량 : 1과(顆) 지정일 : 2017.01.02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12 (세종로, 국립고궁박물관) 시 대 : 1897년(광무 1) 용뉴형(龍鈕形) 옥보(玉寶)인 는 대한제국 선포 때 제작한 고종황제의 국새 10과 중 1과로 황제가 직접 관료를 임명할 때 내려주는 임명장과 훈장서훈 사유를 적은 훈기(勳記)에 찍는 인장이다. 는 조선이 자주국가인 대한제국이며, 고종은 황제임을 선포하고 이후의 모든 국가 행정문서와 궁중의례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한 어보 중의 하나이자 국새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점, 왕실 공예품으로서의 공예사적 가치가 있는 점, 국외 반출되었다가 60년 만에 환수된 의미 있는 유물로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는 점 등 ..

문화재/보물 2017.05.08

보물 제1618-1호_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

보물 제1618-1호 _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 (大韓帝國 高宗 皇帝御璽) 수 량 : 어새1점, 내함1점 지정일 : 2009.09.02 소재지 : 서울 종로구 효자로 12, 국립고궁박물관 (세종로,국립고궁박물관) 시 대 : 대한제국 시대 조선왕조의 ‘대군주(大君主)’ 고종(高宗)은 이웃 청국, 일본 등과 대등한 국가 위상을 확립하고자 1897년 10월에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재출발하였다. 마치 한(漢)나라가 후한(後漢)으로 이어진 것과 같다는 뜻으로 황제의 연호도 후한의 개창제(開倉帝) 광무제(光武帝)의 연호를 빌려 광무(光武)라고 하였다. 대한제국은 황제국으로서 국사에 사용할 국새(國璽), 어새(御璽), 어보(御寶), 보인(寶印) 등을 모두 새로이 제작하였다. 현전하는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를..

문화재/보물 2017.05.08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호_능견난사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호 _ 능견난사 (能見難思) 수 량 : 1착 지정일 : 1972.01.29 소재지 : 전남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신평리) 송광사에서 음식을 담는데 사용하던 그릇이다. 송광사 제6대 원감국사가 중국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가져왔다고 전해지며, 만든 기법이 특이하여 위로 포개도 맞고 아래로 맞춰도 그 크기가 딱 들어 맞는다고 한다. 조선 숙종이 그것과 똑같이 만들어 보도록 명했지만 도저히 똑같이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만들기는 어렵다.”란 뜻에서 능견난사(能見難思)라는 이름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현재 송광사 박물관에 29점이 소장되어 있다. 능견난사 (能見難思) 2017.04.03. 송광사성보박물관 글 문화재청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