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SM면세점 앞, 충정공 민영환어른께서 자결하신 옛터
한말의 충신 민영환은 을사늑약의 폐기를 궁궐 앞에서 주장하다가 일본 헌병의 강제해산으로 실패하자 1905년 11월 30일 새벽 6시에 청지기의 집에서 국민, 외교사절, 황제에게 보내는 유서 3통을 남기고 자결하였다. 순국후 피묻은 옷과 칼을 상청(喪廳)마루방에 걸어두었는데 이듬해 5월 상청의 문을 열어보니 대나무 네 줄기가 마루바닥과 피묻은 옷을 뚫고 올라왔으므로 사람들은 그의 충정이 혈죽(血竹)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이 나무를 절죽(節竹)이라 하였다. 선생의 집은 견지동 27-2 현 조계사 경내에 있었다. 종로구 인사동 공평빌딩 부근 민영환의 자결터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대한민국구석구석
민 충정공 친필 유서
민 충정공께서 남기신 말씀
아아, 나라와 겨레의 치욕이 이에 이르러 장차 생존경쟁에서 다 죽으오리. 무릇 살고자 하면 죽고 죽으려 하면 살게 되나니, 여러분은 어찌 이를 모르리오.
영환은 한갓 죽음으로서 황은에 보답하옵고 우리 이천만 동포 형제께 사죄하오.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고 구천 아래에서 여러분을 돕도록 하오리. 다행히 우리 동포 형제 이천만이 곱절이나 더 분발하여 뜻을 굳게 하고 학문에 힘쓰며 일치단결하여 온갖 힘을 내어 자유독립을 되찾게 되면 죽은 이 몸이 저승에 가서도 기뻐 웃사오리. 아아, 조금도 실망 마르시오.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마지막 말씀드리오.
민영환어른께서 자결하신 옛터
글씨는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1921~2006)이 썼으며, 원로 조각가 백문기(白文基, 1927~2018)가 조각을 했다.
민영환어른께서 자결하신 옛터
칼로 자결하셨기 때문에 칼과 그의 주검을 형상화한 조형물
2021.06.13. 서울 SM면세점 앞
'청허(淸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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