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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7호_충주 제금당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7호 _ 충주 제금당 (忠州 製錦堂) 수 량 : 1동 지정일 : 1980.11.13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관아1길 21 (성내동) 조선 초기 관아건물로, 귀빈들을 맞이하던 영빈관으로도 사용했던 건물이다. 고종 7년(1870) 청령헌과 함께 불에 타버린 것을 같은 해 충주목사 조병로가 다시 지었다. 그동안 중원군수 집무실로 사용하다가 1983년 원형을 살려 복원하였다. 앞면 7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새날개 모양으로 장식된 익공양식으로 지었다. 가운데 2칸은 대청, 오른쪽 2칸과 왼쪽 3칸은 온돌방과 마루방으로 꾸몄다. 충주 제금당 표지판 동헌(東軒)의 동쪽에 위치한 제금당은 왕실과 관련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_충주 청녕헌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_ 충주 청녕헌 (忠州 淸寧軒) 수 량 : 1동 지정일 : 1980.11.13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관아1길 21 (성내동) 동헌은 옛 관청인 관아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중심건물을 가리킨다. 이 건물은 충주목 동헌으로, 당시 충주 목사가 이곳에서 집무를 보던 곳이다. 조선 고종 7년(1870) 화재로 타버린 것을 같은 해 조병로가 다시 세웠다고 한다. 지금 있는 건물은 중원군 청사로 개조하여 사용하다가 1983년 군청 자리를 옮기면서 원형으로 복원하였다. 앞면 7칸·옆면 4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 오른쪽 끝 1칸은 마루방, 대청 왼쪽 2칸은 온돌방, 왼쪽 끝 1칸은 누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충주 청녕헌 ..

충무공 이수일 묘소

충청북도 기념물 제21호 _ 충주 이수일 묘소 (忠州 李守一 墓所) 수량/면적 : 1원 지정일 : 1978.02.22 소 재 지 : 충북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 202-1번지 조선 중기의 무신인 은암(隱庵) 이수일(1554∼1632) 장군의 묘소이다. 선조 16년(1583) 무과에 급제한 후 훈련원의 벼슬을 거쳐 선전관이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장기현감으로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다. 그후 밀양목사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를 맡았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성주목사로서 왜적을 격퇴하였다. 인조 2년(1624)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평안도 병마절도사 겸 부원수가 되어 반란군을 대파하였다.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에 위치한 그의 묘는 부인 전주 이씨와 합장한 것으로 화강암으로 봉분의 아래부분..

충무공 이수일 신도비, 사당, 묘소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5호 _ 충주 이수일 신도비 (忠州 李守一 神道碑) 수 량 : 1기 지정일 : 2001.03.30 소재지 : 충북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 산202-1번지 시 대 : 조선 현종8년(1667) 조선 중기의 무신 이수일(1554∼1632)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로, 신도비는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碑)를 말한다. 이수일(1554∼1632)의 호는 은암(隱庵)이며, 선조 16년(1583)에 무과에 급제한 후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다. 그 후 밀양부사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를 맡았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왜적 격퇴에 공을 세워 가선대부에 올랐다.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반란군을 크게 무찔러 이겨 서울을..

신라의 명필 김생이 창건한 사찰터, 충주 김생사지

충청북도 기념물 제114호 _ 충주 김생사지 (忠州 金生寺址) 수량/면적 : 1곽 지정일 : 2000.12.22 소재지 : 충북 충주시 금가면 김생로 325 (유송리) 김생사지는 신라의 명필인 김생(711∼791)이 만년에 창건한 사찰터이다. 김생은 성덕왕 10년(711)에 가난하고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글씨에 능하였고 원성왕 7년(791) 80세까지 붓잡기를 쉬지 않았다. 이 사지는 주변에 장대석이 많고 석탑재와 기와조각, 도자기조각이 산재해 있어 이곳을 ‘와당밭’이라고 일컫을 정도로 와전류(瓦塼類)가 많이 출토되었다. 김생사지는 『수산집』의 김생사중수기(金生寺重修記)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통하여 북진애(北津崖)-예성(蘂城)의 북쪽나루- 즉 현 위치의 김생사에서 두타행(頭陀行)을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6호_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6호 _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상 (忠州 倉洞里 磨崖如來像) 수 량 : 1구 지정일 : 1980.11.13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 240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에 있으며 자연 암벽 위에 얕은 선으로 새겨진 마애불로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 위에 서 있다. 크고 길게 찢어진 눈꼬리, 큼직한 코와 귀 등에서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양 어깨에 걸친 옷에는 3가닥의 선으로 새긴 것과 더불어 구불구불한 선으로 새긴 특이한 형태의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토속적인 분위기와 세련되지 못한 세부 표현, 하체 조각이 생략된 기법, 구불구불한 선 모양 등 이 지방에서 많이 보이는 독특한 지방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상 좌측으로 150m가면 남한강변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8호_충주 축성사적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8호 _ 충주 축성사적비 (忠州 築城事蹟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80.11.13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관아1길 21 (성내동) 사적비는 어떤 사건이나 사업에 관련된 사실이나 자취를 기록한 비로, 이 비는 충주읍성을 수리·복원한 사실에 관해 적고 있다. 형태는 길쭉한 직사각형의 비몸 위에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비몸에는 성의 수리에 관한 내용들을 새겨 넣었다. 비문에는 조선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후 성과 군용기구 등을 수선하였고,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고종 6년(1869)에 전면적인 수리를 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충주 축성사적비 표지판 충주 축성사적비 충주읍성은 1869년 2월부터 개축하기 시작하여 10개월 만인 11월에 준공하였는데, 이를 기..

충북선에 남아 있는 유일한 급수탑, 충주역 급수탑

충청북도 등록문화재 제1호 _ 충주역 급수탑 (忠州驛 給水塔) 수 량 : 1기 지정일 : 2022.06.03 소재지 : 충북 충주시 봉방동 156-14 시 대 : 1928 ◦ ‘충주역 급수탑’은 급수탑 도입 초기의 석조에서 석조+철근콘크리트조를 거쳐 1920년대 중반경부터 일반화되었던 철근콘크리트조 급수탑 형식으로, 상부 물탱크와 하부 기계실이 구조적, 형태적으로 일체화되며 기능적이고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 급수탑은 원통형 벽체 하단부에 상부가 아치 형태로 처리된 출입구가 1개소 형성되었으며, 내부에는 펌프 기초로 추정되는 콘크리트 구조물과 급배수 철제 배관 흔적 일부가 남아있는 상태이다. ◦ ‘충주역 급수탑’은 충북선에 남아 있는 유일한 급수탑이자 본래 충주역의 상징적 흔적으로 충주 지역 근대기의..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_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 _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忠州 倉洞里 石造藥師如來立像) 수 량 : 1軀 지정일 : 2006.03.03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청금로 112-6 (중앙탑면) 화강암 판석 1매에 보주형 광배와 불신을 부조한 불상으로소발위에 두터운 육계가 표현되었으며 눈썹은 반원형이며 얼굴은 통통하게 살이 쪘다. 양귀는 어깨까지 닿으며 삼도가 표현되었다. 법의는 통견이며 왼손을 가슴에 대고 그 위에 약합을 쥐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위까지 올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있다. 대좌는 장방형 판석에 연화문을 새기고 불상을 끼우도록 되어 있으나 원래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표지판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