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5 10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20호_무안박씨 요여, 문절사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20호 _ 무안박씨요여(務安朴氏 腰輿) , 복제품 수 량 : 1기 요여 지정일 : 2004.10.30 소재지 : 논산시(論山市) 상월면 학당리 368번지 시 대 : 조선 후기 무안박씨 종중의 요여는 홍성 노은서원이 철폐된 1871년에 종중에서 봉사(奉事)를 위해 제작하여 성삼문(成三問)의 신주를 논산시 상월면의 암천공 재실로 봉안할 때와 1903년 성삼문의 사손(祀孫)이 결정되어 문절사(文節祠)에 신주를 봉안할 때에 사용되었다. 요여는 붉은색, 회색, 백색으로 외부를 칠하였고, 천정은 직조물을 사용하여 납작한 반구형의 모양을 하였으며 지붕의 중앙 부분에 보주형의 장식을 달았다. 사방에 붉은색의 처마를 만들었고, 좌․우․후면에는 들창문을, 정면에는 쌍창문을 하였다. 또한 가마의 아래에..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_동래부 동하면 고문서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 _ 동래부 동하면 고문서 (東萊府 東下面 古文書) 수 량 : 30책 지정일 : 1993.12.31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대연동,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이 문서는 조선시대 동래부 동하면(지금의 부산시 해운대구) 일원의 지방자치 행정에 관련된 문서이다. 전 30책으로 1910년 이전의 문서가 383면, 이후의 문서가 87면으로 합 470면이다. 이 고문서는 동하면 지역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소상히 알려줄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지방행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혀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동하면우세답개양안(東下面牛稅畓改量案) _ 조선 1824년 동하면우세답개양안 표지판 동면하단관우절목책(東面下端官牛節目冊) _ 조선 1765년 동면하단관우절목책 표지판 ..

국내 유일의 석재족보를 남긴 가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54호_홍성 연산서씨석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54호 _ 홍성 연산서씨석보 (洪城 連山徐氏石譜) 수 량 : 4매 지정일 : 1997.08.05 소재지 :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홍주성 박물관 홍성의 연산 서씨 족보를 돌에 새긴 특이한 유물이다. 족보라는 것은 한 집안의 세계(世系)를 기록하여 가문의 형통과 맥을 후대에 책으로 만들어 보존하여 전해지는 것이 보통인데 연산 서씨는 특이하게 136년 전에 8매의 4각 오석(검은 빛이 나는 단단한 돌)에 족보를 새겨 보존하고 있다. 크기는 가로 25㎝, 세로 36㎝이며, 두께는 3㎝정도이다. 홍성 연산서씨석보 (洪城 連山徐氏石譜) 표지판 국내 제일의 석재족보를 남긴 가문, 송성의 연산서씨 연산서씨의 시조는 연성군 서준영으로 성균관 생원이었던 아들 서보가 고려멸망 후 처가인 결성현 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_홍주성 수성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 _ 홍주성 수성비 (洪州城 修城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홍성군. 홍주읍성 내 시 대 : 1827년 홍주성을 고쳐 짓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홍주는 서해로 가는 길목으로 교통의 중심이며, 충청 서부지역의 군사적 요충지가 되는 곳이다. 홍주성은 조선시대 문종 1년(1451)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쌓아 놓은 곳으로, 민종식, 이세영, 채광묵, 안병찬 등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에 반대하며 의병을 일으켜 이곳에 와서, 성에 머물러 있던 일본군을 덕산으로 쫓아내 성을 되찾았던 전투로 유명하다. 비문에는 순조 24년(1824) 진장 김계묵과 목사 이현규가 이 성을 돌아보고 성이 황폐해진 모습에 탄식하여 수리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4호_성삼문선생 유허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4호 _ 성삼문선생 유허비 (成三問先生 遺墟碑) 분 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 1기 지정(등록)일 : 1984.05.17 소 재 지 : 충청남도 홍성군 매죽헌길 403-12 (홍북읍, 성삼문선생유허지) 시 대 : 1744년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 홍성군 유허비란 옛 선현의 자취가 있는 곳을 후세에 전하고 이를 계기로 그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두는 비로, 이 비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이면서 사육신의 한사람인 성삼문(1418∼1456) 선생의 공적을 적고 있다. 선생은 세종 29년(1447) 문과 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집현전 학사로 뽑혀 왕의 극진한 총애를 받았다. 왕이 훈민정음을 만들 때에는 정인지·최항·박팽년 등과 함께 훈민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1호_광경사지 석불좌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1호 _ 광경사지 석불좌상 (廣景寺址 石佛座像) 수 량 : 1구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남 홍성군 홍성읍 내법길 81-23 (내법리) 시 대 : 고려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내법리 용주사에 있는 석불좌상이다. 원래는 홍성읍 대교리 광경사에 있었던 것으로 1975년 이곳으로 옮겨 왔다. 화강암으로 만든 이 불상은 머리의 조각이 분명하지 않고,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도 작은 편이다. 둥근 얼굴에서는 사실미가 흐르며, 직선으로 뻗어나간 두 눈은 진주로 눈동자를 끼웠던 흔적이 보인다. 목에는 3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있으며, 옷주름은 평행의 단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63호)의 수법과 비슷하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에는 연꽃잎..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0호_대교리 석불입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0호 _ 대교리 석불입상 (大校里 石佛立像) 수 량 : 1구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남 홍성군 홍성읍 대교리 540번지 시 대 : 고려시대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대교리에 있는 불상으로 광경사지 미륵불이라고도 불린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고, 얼굴은 눈·코·입을 낮게 돋을새김하였다. 주먹코와 두툼한 입술, 길다란 눈 등이 매우 익살스러운 표정을 만들고 있다. 신체의 윤곽은 선으로 표현했으며, 앞면에만 조각을 하였다. 양 어깨를 감싼 옷을 걸치고 있으며, 가슴에서 발까지 U자형의 옷주름을 새겼다. 오른손은 가슴에 붙이고 왼손은 손바닥이 보이게 들고 있다. 조각수법이 거칠고 비례감각이 없는 점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만들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9호_광경사지 삼층석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9호 _ 광경사지 삼층석탑 (廣景寺址 三層石塔) 수 량 : 1구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홍성군 도청대로 29-21 (홍성읍), 홍성여자중학교 정문우측 안 시 대 : 미상 광경사의 옛 터에 당간지주와 함께 남아 있는 3층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중앙과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 떠 새겼다. 탑신의 각 층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쌓아 올렸는데, 1층 몸돌이 큰것에 비해 2·3층 몸돌의 높이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며,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라 갔다.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주고 고려시대 작품으로 짐작된다. 광경사지 삼층석탑 표지판 광경사지 삼층석탑 광경사지 ..

충청남도 기념물 제171호 _ 홍성 오관리 느티나무

충청남도 기념물 제171호 _ 홍성 오관리 느티나무 수 량 : 2주(476㎡) 지정일 : 2005.10.31 소재지 : 충청남도 홍성군 아문길 27 (홍성읍, 홍성군청) 시 대 : 고려시대 홍성 오관리 느티나무는 고려조의 공민왕이 식재한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고을에 액운(厄運)이 낄 것 같으면 느티나무가 밤을 세워 울었으며 이 때마다 서둘러 예방을 하였다고 한다. 역대 목민관들이 홍주에 부임하게 되면 제일먼저 이 나무아래에 제물을 차려놓고 군민의 무고와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하며 현재에도 제물을 차려놓았던 기대가 남아있다. ∘ 수 고 : 17.0m (수형-원정형) ∘ 수 고 : 11.5m (수형-원정형) ∘ 흉고둘레 : 6.6m (직경 2.1m) ∘ 흉고둘레 : 5.22m (직경 1.66m)..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8호_유원각선생 매안감고비 및 비각

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8호 _ 유원각선생 매안감고비 및 비각 (柔遠閣先生 埋案感古碑 및 碑閣) 수 량 : 1기 지정일 : 2001.10.25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대연동,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시 대 : 광무 10년(1906) 이 석비는 광무 10년(1906)에 세워졌으며, 조선 후기 대일외교의 실무관청이었던 유원각(柔遠閣)과 관련된 유일한 금석문 자료이다. 비석에는 비의 건립배경과 목적, 비석을 세운 사람들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어, 약조제찰비(시도기념물 제17호)와 함께 왜관(倭館) 및 조선 후기∼근대의 부산역사와 대일관계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비각은 전통적인 목조 기와지붕의 비각과는 달리 비각 전체가 석조로 조성된 것으로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