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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대자서>

_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 17세기, 종이에 먹, 첩장(帖粧),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17세기 명필 송준길의 글씨 인조~현종 떄의 명필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이 쓴 글자 '위학(爲學)'. '정일(精一)'. '거성(去聖)'. '계절(繼絶)'로 "정일한 마음으로 중도를 지켜 성인의 심학(心學)을 이어가라"는 뜻이다. 표지에 근대 서예가 이병희(李丙熙)가 '우암 · 동춘 양선생 유묵(尤庵同春兩先生遺墨)'이라 썼지만, 서풍으로 보아 모두 송준길의 필적으로 여겨진다. 양송(兩宋)이라 불린 우암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은 한호의 글씨를 배워 초기에는 비슷한 필체였으나, 이후 송준길은 이황의 서풍을 더해 단정한 짜임과 완곡한 획법을 구사했고, 송시열은 당나라 ..

장기도(將棋圖)

_ 작가미상, 18세기말~19세기초, 비단에 채색,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한양에서 유행한 놀이 장면을 담은 풍속화 한양 사람들의 주요 놀이 중 하나인 장기를 두는 광경을 그린 풍속화이다 장기는 고려 시대에 궁중에서 유입된 용병술 놀이로 조선 후기 널리 확산되어 바둑과 함께 크게 성행하였다. 그림 속 나무 아래에 그려진 인물 구도는 절파 양식을, 인물 표현은 김홍도의 화풍에 따른 것이다. _ 작가미상 _ 작가미상 2022.07.10. 서울역사박물관_명품도시 한양 보물 100선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모란도병풍 (牡丹圖屛風)

_ 작가미상, 19세기 말, 비단에 채색,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모란과 괴석이 조합된 4폭 병풍이 한 쌍을 이루고 있는 궁중장식화이다.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하여 왕실 가족들의 생활 공간이나 다양한 왕실 의례 행사를 장식하는 병풍에 많이 그려졌는데, 이 병풍은 흥선대원군의 운현궁 안채인 이로당에서 사용한 것이다. 궁중 모란화의 특징인 만개한 꽃 9송이와 꽃봉오리 8송이로 구성되어 있으며 궁중 화원들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 모란의 상징 부귀영화 상징 궁중에서는 왕실의 안녕과 나라의 번영을 기원하는 상징 2022.07.10. 서울역사박물관_명품도시 한양 보물 100선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명성황후의 <일편단충> 필적과 김규복의 <발문>

명성황후의 필적과 김규복의 _ 명성황후, 김규복, 조선 1885년, 종이에 먹, 이화여대박물관 소장 명성황후가 직접 쓴 네 글자와 이 글씨를 하사받은 내시부사 김규복이 쓴 이 함께 남아 있는 유물이다. '일편단충"은 "마음에서 우러난 참된 충정심"이라는 뜻이다. 명성황후는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 충성을 다해 왕실을 보필한 세 명의 환관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 글씨를 하사하였다. 김규복의 에는 명성황후가 네 글자를 환관들에게 내려준 배경과 그 의미가 자세히 적혀있어, 이 글씨가 명성황후가 직접 쓴 글씨임을 분명하게 증언한다. 19세기 말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조선은 극심한 혼란기를 겪었다. 1882년의 임오군란(壬午軍亂)과 1884년의 갑신정변(甲申政變)은 조선 말기의 정치적 혼란상을 보여주는 대표..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의 <석고가>

_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7~1777), 1734년, 견본묵서, 서울역사박물솬 소장 18세기 명필 이광사의 글씨 영조 때 명필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7~1777)가 당나라 문장가 한유(韓愈)의 를 소자 해서로 쓴 것이다. 스승 윤순(尹淳) 이래로 왕희지의 에 바탕을 둔 소해(小楷)로 엄정한 짜임과 명료한 획법을 보인다. 소론 명가에서 성장한 이광사는 시 · 서 · 화에 두루 능한 인물로 특히 서체로 유명했으며, 서예이론서인 《서결(書訣) 》을 지어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_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7~1777) 2022.07.10. 서울역사박물관_명품도시 한양 보물 100선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사적 제417호_괴산 송시열 유적, 신도비 및 묘소

사적 제417호 _ 괴산 송시열 유적 (槐山 宋時烈 遺蹟) 면 적 : 24,806㎡ 지정일 : 1999.12.29 소재지 :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길 188, 외 (화양리) 시 대 : 숙종 22년(1696년) 조선시대 성리학 중심지 중 한 곳인 우암 송시열 유적이다. 송시열(1607∼1689)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으로 조선 효종(재위1649∼1659)을 도와 북벌정책을 추진하는 등 자주적인 정치를 펼쳤으며, 주자학의 대가로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화양서원은 우암 송시열이 잠시 머물렀던 장소에 세워진 서원으로 조선시대 학자들이 많이 모였던 장소이다. 만동묘의 자리는 중국 명나라 황제인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던 곳이다. 만동묘 주변에는 송시열과 관련된 암서재, 하마비, 읍궁암..

문화재/사적 2022.08.08

해남 대흥사 사천왕도

해남 대흥사 사천왕도(海南 大興寺 四天王圖) _ 조선 1794년 조성, 1994.08.15.도난 대흥사 사천왕도는 건륭(乾隆) 59년(1794)에 조성하여 천불전 내부에 봉안되었던 불화이다. 두 폭에 각각 사천왕 2구씩 그려졌으며, 전각 내부에 봉안한 사천왕도 중에서 가장 시기가 이르다. 그림 하단에 '· · · 봉안천불전좌(奉安千佛殿左) '· · ·'라고 명기되어 천불전의 왼쪽 편에 봉안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나머지 한 폭은 대흥사에 남아 있어 이번 환수를 통해 사천왕도의 완전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두 폭의 불화 모두 지언(智彦)이 중심이 되어 그렸다. 두 그림은 밑그림의 형태는 비슷하지만 채색 방식이나 오색 구름의 표현 등에서 차이를 보이며, 이는 각각의 불화 조성에 참여한 보조화승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