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105

사적 제417호_괴산 송시열 유적, 신도비 및 묘소

사적 제417호 _ 괴산 송시열 유적 (槐山 宋時烈 遺蹟) 면 적 : 24,806㎡ 지정일 : 1999.12.29 소재지 :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길 188, 외 (화양리) 시 대 : 숙종 22년(1696년) 조선시대 성리학 중심지 중 한 곳인 우암 송시열 유적이다. 송시열(1607∼1689)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으로 조선 효종(재위1649∼1659)을 도와 북벌정책을 추진하는 등 자주적인 정치를 펼쳤으며, 주자학의 대가로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화양서원은 우암 송시열이 잠시 머물렀던 장소에 세워진 서원으로 조선시대 학자들이 많이 모였던 장소이다. 만동묘의 자리는 중국 명나라 황제인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던 곳이다. 만동묘 주변에는 송시열과 관련된 암서재, 하마비, 읍궁암..

문화재/사적 2022.08.08

남한에 있는 고려왕릉 5기

남한에 있는 고려 왕릉 5기 1. 강화 석릉(사적 제369호) : 고려 21대왕 희종의 능 2. 강화 곤릉(사적 제371호) : 고려 22대왕 강종의 두번째 왕비 원덕태후 유씨의 능 3. 강화 홍릉(사적 제224호) : 고려 23대왕 고종의 능 4. 강화 가릉(사적 제370호) : 고려 24대왕 원종의 왕비 순경태후의 능 5. 고양 공양왕릉(사적 제191호) : 고려 34대 마지막 왕인 공양왕(1345~1394,재위 1389∼1392)과 그의 부인 순비 노씨의 능 삼척 공양왕릉(강원도 기념물 제71호) : 고려 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재위 1389∼1392)의 능 ▼강화 석릉입니다 사적 제369호 _ 강화 석릉 (江華 碩陵) 소재지 : 인천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산182번지 고려 희종(재위 1204..

문화재/사적 2022.06.30

조선시대 왕을 낳은 일곱 비빈들의 신위를 모신 사당, 사적 제149호_육상궁(칠궁)

사적 제149호 _ 서울 육상궁 (서울 毓祥宮) 수량/면적 : 일곽 지정일 : 1966.03.22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2 (궁정동) 시 대 : 조선 영조 1년(1724) 영조의 생모이며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영조 원년(1724)에 세워 숙빈묘라 했으나 영조 29년(1753)에 승격시켜 육상궁이라 고쳐 불렀다. 고종 19년(1882) 화재를 당하여 다음해에 복구했다. 육상궁은 칠궁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1908년에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는 7개의 궁들을 이곳에 옮겼기 때문이다. 칠궁은 육상궁, 저경궁, 대빈궁, 연호궁, 선희궁, 경우궁, 덕안궁을 일컫는데 조선왕조 역대 왕들의 친모로서 정비에 오르지 못한 7인의 신위를 모셔 제사지내는 곳이다. 육상궁은 나즈막한 ..

문화재/사적 2022.05.17

사적 제106호_구례 석주관 칠의사묘

사적 제106호 _ 구례 석주관 칠의사묘 (求禮 石柱關 七義士墓) 면 적 : 10,152㎡ 지정일 : 1963.01.21 소재지 :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171번지 시 대 :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전라도지방의 관문이었던 석주관을 끝까지 지키다가 숨진 구례출신 의사(義士) 7명의 무덤이다. 석주관은 경상도지방에서 전라도지방으로 통하는 관문으로서 군사전략상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안음의 황석산성·진안 웅치·운봉 팔량치와 함께 영남과 호남 사이의 4대 관문의 하나로, 고려때부터 이곳에 진영이 설치되어 왜군의 침략을 막았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왜군은 호남지방을 목표로 하여 이곳을 집중공격하였다. 그러자 왕득인이 의병을 일으켜 적에게 대항하였으나 결국 숨지고 말았다. 그후 왕득인(王得仁)의 ..

문화재/사적 2022.04.18

사적 제83호_서울 선잠단지

사적 제83호 _ 서울 선잠단지 (서울 先蠶壇址) 면 적 : 1,475㎡ 지정일 : 1963.01.21 소재지 : 서울 성북구 성북동 64-1번지 시 대 : 성종 2 누에치기를 처음 했다는 중국 고대 황제의 황비 서릉씨를 누에신(잠신蠶神)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이 단은 고려 성종 2년(983)에 처음 쌓은 것으로, 단의 앞쪽 끝에 뽕나무를 심고 궁중의 잠실(蠶室)에서 누에를 키우게 하였다. 세종대왕은 누에를 키우는 일을 크게 장려했는데, 각 도마다 좋은 장소를 골라 뽕나무를 심도록 하였으며, 한 곳 이상의 잠실을 지어 누에를 키우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중종 원년(1506)에는 여러 도에 있는 잠실을 서울 근처로 모이도록 하였는데 지금의 강남 잠실이 바로 옛 잠실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선잠단..

문화재/사적 2022.04.18

사적 제385호_구례 석주산성

사적 제385호 _ 구례 석주관성 (求禮 石柱關城) 면 적 : 76,626㎡ 지정일 : 1993.11.10 소재지 :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산65번지 외 12필지 시 대 : 고려말~조선 중기 고려 말기에 왜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진을 설치했는데 임진왜란(1592) 때 전라방어사 곽영이 호남지역의 왜적을 막기 위해 옛 진 위에 석주관성을 쌓았다. 성의 북쪽과 남쪽이 지리산과 백운산의 험한 산줄기이고 그 사이에 섬진강이 흐르고 있어 군사 방어 지형으로도 중요한 길목이다. 경사진 산허리를 따라 만든 성곽의 길이는 약 736m이고 돌로 쌓아 만든 벽의 높이는 50∼120cm이다. 성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활이나 총을 쏠 수 있게 갈라놓아 적의 공격으로부터 잘 방어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며 성벽 아래쪽과..

문화재/사적 2022.04.12

사적 제139호_김포 문수산성, 문수산, 문수사

사적 제139호 _ 김포 문수산성 (金浦 文殊山城) 면 적 : 288,018㎡ 지정일 : 1964.08.29 소재지 : 경기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 산36-1번지 시 대 : 조선시대 갑곶진과 함께 강화의 입구를 지키던 조선시대의 성이다. 조선 숙종 20년(1694)에 돌을 이용해 쌓은 석축산성으로 순조 12년(1812)에 고쳐 쌓았다. 잘 다듬어진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위에 몸을 숨기기 위한 방어시설인 여장을 둘렀다. 당시의 성문은 취예류·공해루 등 3개의 문루와 비밀통로인 암문 3개가 있었다. 이 중 취예루는 갑곶진과 마주보는 해안에 있었으며 육지로 나오는 관문의 역할을 하였다. 현재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는 없어지고 마을이 되었으며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벽만 남아있다.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문화재/사적 2022.03.05

사적 제130호_강화 삼랑성, 양헌수 승전비

사적 제130호 _ 강화 삼랑성 (江華 三郞城) , 남문 면 적 : 260,536㎡ 지정일 : 1964.06.10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산41번지 시 대 : 삼국시대 정족산성이라고도 하며 단군의 세 아들이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있어 삼랑성이라 부른다. 이 성이 만들어진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려가 1259년 삼랑성 안에 궁궐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전에 이미 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곽이 쌓여져 있는 모습을 보면 보은의 삼년산성이나 경주의 명활산성처럼 삼국시대 성의 구조를 찾을 수 있으므로,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으로 추측된다. 고려 때 보수공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영조 15년(1739)에 성을 다시 쌓으면서 남문에 문루를 만들고 ‘종해루’라고 하였다. 조선 현종 1년(166..

문화재/사적 2022.02.23

사적 제227호_강화 광성보

사적 제227호 _ 강화 광성보 (江華 廣城堡) 면 적 : 144,632㎡ 지정일 : 1971.12.29 소재지 : 인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23-1번지 시 대 : 조선시대 광성보는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이다.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1233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외성을 쌓았는데, 이 성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성으로 바다길을 따라 길게 만들어졌다. 광해군 때 다시 고쳐 쌓은 후 효종 9년(1658)에 광성보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숙종 때 일부를 돌로 고쳐서 쌓았으며,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 돈대가 만들어 졌다. 영조 21년(1745)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었는데 ‘안해..

문화재/사적 2022.02.12

역사의 흔적이 살아 숨쉬는 곳, 사적 제225호_강화 초지진

사적 제225호 _ 강화 초지진 (江華 草芝鎭) 면 적 : 4,242㎡ 지정일 : 1971.12.29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624번지 시 대 : 조선시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하여 구축한 요새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서 초지진 설치에 대한 기사에 따르면 조선 효종 6년(1655)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이 침략하였을 때 이들과 맞서 싸운 곳으로 1871년에 미국 해병이 초지진에 침략해 왔을 때 전력의 열세로 패하여 점령당하였다. 이 때 군기고, 화약창고 등의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개항시키기 위해서 파견했던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

문화재/사적 2022.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