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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컬렉션, <분청사기 조화 모란무늬 항아리>

_ 조선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 국립중앙박물관 큼직한 항아리에 흰 흙을 거칠게 바른 후 선으로 긁어 모란무늬를 간략하고 힘차게 표현했다. 갈색 바탕흙과 어지러운 백색 붓자루 위로 모란무늬를 그린 선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돈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솟아오르는 생명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2022.04.28., 국립중앙박물관, 故 이건희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_어는 수집가의 초대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0호_김우열가옥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0호 _ 김우열가옥 (金宇烈家屋) 수 량 : 3동(388㎡) 지정일 : 1985.12.31 소재지 :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로 79 (갈산면) 시 대 : 조선 후기 안채, 사랑채, 헛간채를 가지고 있는 19세기 후반의 가옥으로, 전체적으로 트인 ㅁ자형 배치를 보인다. 안채는 ㄱ자형으로 가운데의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엌과 안방, 오른쪽에 건넌방이 배치된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평면구성이다. 안채의 남쪽에 一자형으로 자리잡은 사랑채는 왼쪽에 대문과 문간방을 두고 오른쪽에 대청과 사랑방을 두어 행랑채를 겸하고 있다. 조선 후기 세련된 건축기술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주택이다. 김우열가옥 표지판 김우열가옥 표지석 김우열가옥 사랑채 안채의 남쪽에 一자형으로 자리잡은 사랑채는 왼쪽에 대문과 문..

이건희컬렉션, 육조대사법보단경 언해본

_ 조선 1496년, 종이에 목판 인쇄, 국립중앙박물관 선불교의 사상과 수행에 관한 한문 서적을 한글로 옮겼다. 한문을 읽기 쉽도록 한글 토를 달아 싣고, 뒤에 우리말로 풀어썼다. 15세기 말 한자음 표기에 옛이응이 사라지는 등 한글 창제 당시보다 간략하개ㅔ 변화한 표기법을 확인할 수 있다. 2022.04.28., 국립중앙박물관, 故 이건희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_어는 수집가의 초대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7호_김좌진장군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7호 _ 김좌진장군비 (金佐鎭將軍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백야로546번길 12 (행산리) 시 대 : 1949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김좌진 장군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김좌진(1889∼1930) 장군은 홍성에서 태어나 15세에 집안의 노비를 풀어주고, 그들에게 농사지어 먹고 살만한 논밭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1905년 서울로 올라와 육군무관학교에 들어갔으며, 1907년 고향에 돌아와 호명학교를 세우고 90여칸의 자기집을 학교건물로 쓰게 했다. 광복단에 들어가 항일투쟁을 하다 1918년 만주로 건너가 3.1 독립선언에 전주곡이 되는 무오독립선언서에 39명의 민족지도자의 한사람으로 서명하였다. 그 후 북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5호_홍가신청난비, 청난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5호 _ 홍가신청난비 (洪可臣淸亂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월산리 산1 시 대 : 1641년 홍가신(1541∼1615)이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후, 그 사실을 후세에 전하고자 세워놓은 비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계속되는 흉년으로 민심이 동요된 틈을 타서 왕의 종친이면서도 서자인 이몽학이 조선 선조 30년(1597)에 반란을 일으켜 홍주성을 쳐들어 왔다. 당시 홍가신은 홍주목사로 있으면서 난을 평정하였고, 그 공으로 청난공신(淸難功臣) 1등에 봉해졌다. 비는 인조 19년(1641)에 세웠는데, 오랫동안 돌보지 못하여 파손된 것을 1973년 홍성군수가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홍가신청난비 (洪可臣淸亂碑) 표지판 이 ..

예천 한천사 지장시왕도

예천 한천사 지장시왕도(醴泉 寒天寺 地藏十王圖) _ 조선 1748년 조성, 도난일 미상 중앙의 지장보살과 좌우 협시인 도명존자, 무독귀왕, 좌우로 10명의 시왕과 상단의 여섯 보살이 함께 그려진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이다. 상단의 여섯 보살과 중 · 하단의 지장보살 및 권속은 구름으로 구획을 나누어 존격을 표현하고 있다. 지장보살 상단으로는 늙은 비구로 추정되는 인물이 표현되었는데 다른 지장시왕도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도상이다. 지장시왕도 조성이 유행하기 시작하던 18세기 초반 도상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이 불화의 장황은 원형이 몇 차례 변형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족자 형태로 표구되었다. 화기가 일부 잘려나가고, 사찰명과 조성시기 등 일부 기록이 훼손되어 원 소장처를 알아 볼 수 없다. 하지만 사..

국가민속문화재 제231호_홍성 노은리 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제231호 _ 홍성 노은리 고택 (洪城 魯恩里 古宅) 수량/면적 : 1필지/3,088㎡ 지정일 : 1996.02.13 소재지 : 충남 홍성군 홍북면 최영장군길 11-26 (노은리) 이 고택은 조선시대 사육신*의 한 분인 성삼문과 관련된 집으로 성삼문의 외손자인 엄찬이 살았던 집으로 1676년 전까지 성삼문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병자사화** 당시 성삼문 집안의 남자들이 모두 처형되어 성삼문의 둘째딸(효옥)이 이곳으로 와 부친의 제사를 지내며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약간 높은 대지에 경사진 지형을 활용하여 서쪽을 바라보도록 하였는데, 안채를 ’⊓‘자로 놓고, 그 앞에 행랑채를 ’−‘자로 놓아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따라서 안마당은 외부에서 드러나지 않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61호_홍성 구절암 마애불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61호 _ 홍성 구절암 마애불 (洪城 九節庵 磨崖佛) 수 량 : 1구 지정일 : 1998.07.25 소재지 :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지정리 산102-2 (구절암) 시 대 : 미상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지정리의 자연 암벽에 크게 새긴 이 마애불은 지각변동으로 인하여 약간 기울어진 상태이다. 머리에는 구슬로 장식된 관(冠)을 쓰고 있으며 눈썹 사이에는 동그란 백호(白毫)가 뚜렷이 새겨졌고 손과 발은 명확히 표현되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마애불들이 거의 서 있는 모습인데 비해 이 마애불만은 연꽃모양의 대좌(臺座) 위에 앉아 있어 특이하다. 형태가 특이한 보기드문 작품으로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홍성 구절암 마애불 표지판 홍성 구절암 마애불..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3호_대원군 척화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3호 _ 대원군 척화비 (大院君 斥和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오봉리 시 대 : 1871년 척화비란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치르면서 더욱 그러한 의지를 굳혀, 서양세력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경계하여야 한다는 의지를 국민에게 심어주고자 서울 및 전국의 중요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이다. 홍성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이 비는 넓적한 자연암석 위에 비몸을 꽂아놓은 모습이다. 비문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을 할 수 밖에 없고, 화친을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라는 강한 어투의 경고문구를 적어 놓았다. 고종 8년(1871)에 전국에 일제히 세운 것으로, 1882년 임오..